<서평>
한국에서 醫를 論한다- 著 : 이종찬 -
장기완 교수(전북치대 예방치학교실)

  • 등록 2000.04.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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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醫란 무엇인가? 醫學은 무슨 뜻인가? 醫術이라는 용어는 어떤 것인가? 醫療는 나나 국민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치과의사라면 어렴풋하게나마 나름대로 뜻을 파악하고 있지만, 그 실체를 명확히 이야기 하기는 쉽지 않다. 궁금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이 책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하여 명쾌하면서도 담백하게 답을 제시하고 있다. 요즘 TV를 보면, 정책홍보성 캠페인이 한창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제작한 국민연금보험에 관한 홍보, 노령연금에 시행에 따른 홍보 등. 그러나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보건복지부에서 제작한 캠페인이다. 2000년 7월 시행되는 국민건강보험, 같은 시기에 실시되는 의약분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캠페인이 방송되는 순간에도 신문 지면과 방송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기사가 바로 의약분업과 관련한 의사들의 시위와 약사들의 시위, 의료보험의 통합을 둘러싼 지역의료보험조합의 시위와 직장의료보험의 시위, 한약 조제권을 둘러싼 지역의료보험조합의 시위와 직장의료보험조합의 시위, 한약조제권을 둘러싼 약대생들의 시위와 한의대생들의 시위 등이다. 왜들 싸우는 것일까? 밥그릇 싸움은 저렇게 하는 것인가? 이렇게 세상이 시끌벅적한 일들이 벌어져도 국민들은 전혀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모두가 보건의료 정책의 수혜자여야 하고 당사자여야 하는 국민은 빠진 의료의 공방은 어디까지 갈 것이며, 왜 그래야만 하는가? 가만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지만, 아직도 분명한 이유를 모르겠다. 왜 그럴까…. 1. 왜 지금 醫가 문제인가? 최근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을 주인공으로 한 TV 드라마가 이 부문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드라마의 내용은 명의에서 신의의 경지에 이른 한 韓醫學者의 일생을 다루고 있지만, 시청자들이 그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은 드라마틱한 허준의 일생이 아니라 그 어려운 시절 참다운 의료인의 길을 걸었던 한 의료인에 대한 존경의 뜻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일반 국민들에게 醫는 가까워질 수 없는 대상인 것이다. 그럼 왜 醫는 우리에게서 가까워질 수 없는가?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 재직중인 이종찬 교수는 신간 「한국에서 醫를 논한다」에서 여러 각도로 한국사회의 醫에 관한 문제를 진단하고 있다. {20세기 한국의학의 비극은 醫者들이 몸의 주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양의학에 의해 사회화된 醫者들은 임상의학을 신봉하건 신봉하지 않건 간에 신체와 정신의 이분법 속에 갇혀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의학을 따르는 醫者들은 한의사 면허증이 있고 없고 간에 몸의 권력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자는 의학지식에 의하여 몸에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한국인의 몸이 서구의 의학지식에 의해 타인화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후자는 漢의학을 韓의학으로 개명하였지만, 醫術이 몸에 작용하여 육체의 주인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볼 때 20세기 한국 역사는 몸이 醫로부터 점점 더 철저히 소외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비극의 역사는 의학, 의술차원에서 모두 드러난다.} 2. 植民醫觀의 극복이라는 과제 한국 사회에서 복잡한 醫의 문제를 단순히 구조적인 문제와 의료인들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오히려 현재 한국의 문제는 역사적인 질곡에 통해 이루어진 근대화 과정에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이 근대화 과정에서의 식민지 경험이라는 특수성은 한국사회의 의료현실을 뿌리깊게 왜곡시키기에 충분했다. 역사에서 植民史觀의 극복이 절대절명의 과제였다면, 의(학)료계에서는 植民醫觀의 극복이라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료 현실을 논하면서 이점을 놓치지 않는다. 잠시 본문을 인용하자.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가 겪은 뼈아픈 역사적 과정에서 비롯된다. 일제에 의한 식민 통치를 겪으면서 몸을 바라보는 의학적 시선(medical gaze)은 식민성에 종속된다. 한국인의 몸은 식민지적 통제의 대상일 뿐이다…. 이어서 해방과 함께 미국의 패권주의가 식민지 권력을 대체하면서 의학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임상적 시선은 철저히 서구화, 특히 미국화 된다. 몸은 身土不二이건만 그것에 대한 임상적 판단의 근거는 팍스 아메리카나로부터 무비판적으로 차용되고 있다.} 더군다나 저자는 우리 나라에서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의술의 구성 방식이 이런 비극을 더욱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즉 {한국사회에서 의술 행위는 유교적질서와 의학적 합리성을 자의적으로 구성하는 의료인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권위로 드러나는 유교적 질서는 의학적 합리성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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