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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5.09.30 16: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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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2022년 한 통계에 의하면 치과의사의 평균 수명이 72세라고 한다. 일반인보다 1.8년 짧은 수치라고 한다. 사망 원인으로는 암이 가장 많았고, 심혈관 질환과 사고사, 자살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 내가 40대 중반을 조금 넘었는데… 내가 치과의사 평균 수명까지 산다고 생각해보면 25년 정도 살 수 있는 것 같다. 건강하게 사는 연한, 건강수명은 겨우 20년 남짓 남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20년은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 갓 성인이 되는 정도의 시간이다. 20년은 내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임상을 해온 연한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정말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니... 짧은 생각들이 이어졌다.


노년에 대한 공감이 새로웠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라는, 노년 환자들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것은 남은 삶이 짧다는 것에 대한 불평, 푸념이 아니다. 진정, 짧은, 남은 삶에 대한 자각의 표현이다. 평균 수명을 넘기신 환자분의 경우에는 자신이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름의 계산으로 추정한 여생이 5년이라면, 3년이라면, 또는 1년이라면… 치과 치료에 대한 의욕, 의지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라이프 스테이지에 대한 이해와 수용, 그로부터 나오는 인생 계획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느꼈다. 인생 초반 20년은 남은 인생을 위한 준비기라고 생각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학습하고, 직업을 갖는다. 요즘은 준비기가 길어져서 30대의 삶까지도 준비기에 포함되는 것 같다. 좀 잔인하지만, 대체로 40대 이후의 삶은 30대까지의 관성으로 산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내 삶을 돌아보건대 30대까지는 치과의사 면허증을 갖게 된 것이 표면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성취였던 것 같다. 그리고, 40대 중반이 넘은 지금까지 그 치과의사 면허증을 활용하여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아이들이 장성할 때까지 그 하루 하루들은 반복될 것 같다. 지금의 하루 하루들을 벗어나는 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하루 하루 내게 주어지는 환자분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짧고 할 일은 많다.


이미 자리잡은 사고방식, 생활양식을 바꾸는 일도 쉽지 않다. 이제 와서 새로운 면허증을 따는 일이 어렵듯, 이미 내 안에 자리잡은 생각들, 나를 둘러싼 생활들을 바꾸는 일도 어렵다. 안정적으로 쌓아 올린 것들이 그저 무너지지 않고 내 생애 마지막 날까지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깨달음이 커도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을 수 있다.


남은 생에 대한 고찰을 한 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는 나를 발견하였다. 나는 계속 치과의사 일을 할 것 같다. 그것은 내가 가진 치과의사 면허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질 수는 있을 것 같다. 목표 면에서, 치과를 조금씩 성장시키겠다는 마음보다는 좀 더 가치 있는 진료, 가치 있는 경영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너무 어려운 치료계획을 세워서 환자분을 괴롭히기보다는 쉽고 간결한 치료계획, 교육, 예방을 통해서 환자분이 편안하게 치료를 받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질 욕심, 학위 욕심도 조금은 내려놓게 되었다. 더 먼저 추구해야 할, 더 의미 있는 일들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환자분 편에 조금 더 서 보게 되었다. 더 공감해 본다. 나도 환자분도 짧은 인생을 살다 간다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곽재혁 좋은이웃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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