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자의 시간은 6월 8일로, 내일 6월 9일은 구강보건의 날이다. 첫 어금니가 나오는 시기인 6세의 숫자 ‘6’과 어금니를 뜻하는 구치(臼齒·절구 臼, 이 齒)의 구를 숫자 ‘9’로 바꾸어 조합하여 탄생한 6월 9일은 일제 해방 직후인 1946년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전신인 조선치과의사회가 국민구강보건을 위한 계몽사업을 펼치기 위해 지정한 날로, 치과계는 정부와 협력하여 대국민 대상 다채로운 구강보건행사를 개최해왔다. 2015년에는 구강보건법에 명시되면서, 2016년 구강보건의 날부터 법정기념일이 되었고, 지정 이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구강보건의 날 취지에 부합하는 관 주도의 행사가 거행되며, 치과계가 이를 후원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법정기념일 지정 이전인 2010년의 보건복지부의 행사 기록(https://blog.naver.com/preventive_dentistry/223123815776)을 살펴보면, 당시에도 보건복지부와 구강보건사업지원단,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치과위생사협회를 비롯한 범 치과계 단체는 2010년 6월 9일(수) ‘치아건강, 우리의 미래’를 주제로 제65회 구강보건의 날(치아의 날) 기념행사를 민관 합동으로 개최한 것을 알 수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 2005년의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https://blog.naver.com/preventive_dentistry/223123814891)를 살펴보면, 대한구강보건협회, 지방자치단체, 대한치과의사협회, 지역 치과의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시군구 보건소에서 준비한 다채로운 행사 계획을 찾아볼 수 있다. 올해로 78회를 맞이하고, 법정기념일 지정 8년 차인 올해 구강보건의 날 행사는 보건복지부가 주최하고,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주관하며, 대한치과의사협회를 비롯한 유관기관 8개 단체가 후원하는 형식으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다. 부산시의 경우, 부산광역시가 주최(주관)하고, 부산시 치과의사회, 교육청, 치과위생사회가 후원하는 형식으로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개최된다.
필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구강보건의 날 행사가 지금껏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민간단체인 대한치과의사협회와 서울, 부산, 광주를 비롯한 시도 치과의사회가 사명감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날은 치과의사들이 진료실을 벗어나 진료실 밖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치료가 아닌 예방과 보건을 설파하면서, 치과의사의 사명감과 긍지를 다시금 되새기는 치과의사들의 축제였으며, 여기에 치과위생사들과 지자체 보건소 구강보건실이 동참하고, 정부기관이 힘을 실어주면서 예방과 구강보건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치과계의 큰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 2015년 구강보건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고, 필자를 포함한 모든 치과의사들은 자축하였고, 치과위생사와 치과기공사, 업계 종사자를 포함한 모든 치과인들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 2018년에는 치협을 비롯한 7개 치과계 단체(치기협·구보협·치산협·치위협·치병협·스마일재단)가 치과계 큰 축제로 승화시키기로 힘을 모으기도 했다(https://dailydental.co.kr/news/article.html?no=102708).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치과의사들에게 발생했다. 구강보건의 날이 남의 집 잔치날이 되었고, 치과의사들은 거기에 초대된 여러 손님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2018년과 2019년 구강보건의 날 기념식은 장관과 국회의원들이 직접 참석해 기념사를 낭독할 정도로 관 주도하에 성대하게 치러졌다(https://blog.naver.com/preventive_dentistry/223123872487). 기념식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중앙 정부의 기념사, 치협을 비롯한 유관 단체장들의 축사, 유공자 표상, 공무원 표창, 공모전 수상자 시상, 홍보 영상 상영, 그리고 구강보건캠페인(부스)로 이어지는 포맷에서 민간 치과의사들은 그저 지켜만 보며 진료실에 앉아 무표정한 박수만 칠 뿐이었다. 시민들을 만날 수 있는 행사장은 유관 단체들의 부스들과 함께 풍성해졌지만, 치과의사들의 부스는 시민들에겐 그저 그런 구강건강상담 뿐이었다. 구강보건의 날이 법정기념일인 정부 주도의 행사로 굳어지게 되면, 치과의사들이 과거 구강보건의 날에 느꼈던 보람과 자긍심은 앞으로는 기대하기 힘들다.
구강보건의 날 행사는 앞으로도 관 주도의 포맷으로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포맷이 고착되면, 구강보건의 날에 대한 치과의사들의 무관심과 실망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되길 바라며, 구강보건의 날이 치과의사들이 가장 기뻐하는 축제가 되기 위해 치협과 각 시도 치과의사회가 리더십을 발휘해 주시길 요청드린다.
올해는 이미 지나갔지만, 내년 구강보건의 날에는 우리 치과의사들이 시민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잠시 상상해보자. 여러분의 그런 상상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 필자가 작년에 했던 상상은 곧 현실이 될 예정이다. 작년 부산시민공원에서 진행된 구강보건의 날 기념 캠페인 행사장에는 치위생(학)과 학생들의 부스는 많았던 반면, 치의학과 학생들은 기회조차 없었다. 올해는 주최측인 부산시 치과위생사회의 협조를 얻어, 치의학과 학생들의 부스가 처음으로 설치된다. 부스명은 “부산대학교 치의학과 학생들과 함께 하는 일일 학습멘토링”으로 예과 1,2학년 학생들이 출전한다. 기말고사 기간만 아니었더라면 더욱 창의적이고 다양한 부스들이 설치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구강보건의 날을 6월 9일로 정했는지, 조선치과의사회가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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