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저주’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저는 위즈덤 하우스에서 출간된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김범준 저)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가장 말미에 다섯 번째 ‘좋은 말투의 법칙’으로 ‘지식의 저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책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지식의 저주’에 대한 내용 소개는 많습니다. 내가 알면 남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렸다는 사실, 이것이 ‘지식의 저주’라고 합니다. 흔히 미국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뉴턴의 실험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한 사람은 테이블을 두드리는데, 누구든 들으면 알만한 노래를 머리 속에서 생각하며 그 노래의 박자에 맞춰 테이블을 두드립니다. 예를 들면 ‘학교 종이 땡땡땡..’ 이런 노래를 상정해 테이블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 테이블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일지 알아 맞춰야 합니다. 두드리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대략 50% 정도는 맞출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 듣는 사람은 겨우 2.5% 맞췄을 뿐이라고 합니다. 즉, 모두 120곡으로 실험을 했는데, 고작 3곡을 맞췄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 실험입니다.
교사는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조금만 알려줘도 다 알 것이라 착각하고, 직장 상사는 부하직원에 대충 말해놓고 다 알아들었을 것이라 착각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분통터져 하는 것은 바로 ‘지식’이 가져다준 ‘저주’라고 합니다. ‘지식의 저주’와 관련해 제가 알아본 대부분의 내용이 대략 이 정도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소개해 드린 ‘지식의 저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저는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히 불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듣는 사람이 매우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고 또 별다른 정보 획득 가능성이 없이 설정된 그런 실험 상황에서는 ‘지식의 저주’가 인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의사소통,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의 의사소통의 문제에 적용시키는 것은 상당히 다른 경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의사소통의 상황에서 듣는 사람이 어떤 태도로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낚아채기 위해- 노력하느냐에 따라 의사소통의 질에 있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로 눈치있는 학생들, 능력있는 부하 직원들이라면 당장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 들었더라도 -이것이 오히려 계기가 되어- 더욱 분발하려는 노력을 시행하고 방법을 강구해 갈 것입니다. 제 스스로의 경우를 돌이켜 생각해보고 또 미루어 생각해 보았을 때 그랬습니다.
교사나 직장 상사(교수님)가 잘 알아듣지 못하게 말씀을 하셨다면 학생이자 부하 직원(수련의)이였던 저는 그 말씀이 도대체 무슨 말씀이였을지를 궁구하여 그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별도의 공부를 시행했습니다. 학생이자 부하 직원(수련의)이였던 저는 조심스럽게 추가적인 질문을 하거나, 알아들을 만한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문제가 되는 의사소통의 상황에서 어차피 쌍방간의 능력치가 다르고, 경험치가 다르고, 역량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정보가 다릅니다.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의사소통의 불완전함을 온전히 말하는 사람에게 전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비단 말하는 사람만의 책임일 순 없고, 듣는 사람의 태도와 자세 역시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학생과 부하 직원이 스스로 알아들으려는 의지가 없는 경우라면 -실로 이런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의사소통 문제의 책임이 교사나 직장 상사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뭔가를 전달하고 의사소통을 이끌어내야 하는 책임을 모두 교사나 직장 상사에게 지우기에 학생이나 부하 직원의 태도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 인간관계에서 지금도 저는 학생이며 또한 아랫사람으로 배우는 입장에 설 때가 많습니다. 가르침을 주시는 윗어른, 선배님들이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기 위한 능동적인 과정을 통해 성숙해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알아듣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후배, 부하 직원들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제가 그러했고, 계속 그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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