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면서 참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연의 시작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할 수도 있고, 그 기억이 너무도 강렬해서 잊혀지지 않기도 한다. 그 인연의 무게는 공기처럼 익숙해져서 매번 잊고 살다가도 어떤 순간에 그 힘이 실감나게 된다.
결혼을 3달정도 앞둔 지금, 나에게 있어서 인연이 그렇다. 인연의 무게감을 새삼 체감하고 있다. 청첩장을 주문하기 전 차근차근 내 인연들을 되돌이켜 보았다. 처음엔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봐야 할지 조차 막막하길래, 일단 카카오톡 연락처를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에 남아있는 수많은 연락처들을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연락을 오래 하지 않아 기억이 흐릿해져 가던 연락처들을 하나하나 짚어 내려가다보니, 그 인연과의 기억들이 조금씩 살아났다. 그래, 언젠가는 참으로 가까웠던 사람들이기에,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무력하게 연락처에 남아있던 카카오톡 프로필이 생명력을 갖게 되는 기분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나씩 연락처를 내려보다 보니, 인연도 그 종류가 참 가지각색이다. 크게 분류하면 좋은 기억의 인연과 나쁜 기억의 인연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고, 세밀히 분류하자면 존경하는 선생님, 즐거웠던 고3때의 동기들, 아끼는 후배들, 사랑하는 가족들 등등 끝도 없다. 뭐가 되었든, 모두 내 인생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혼자일 수 없는 세상에서 내 인생을 채워준 사람들 말이다.
새삼 그 많은 인연들의 무게를 잊고 산 것이 후회가 된다. 결혼식을 앞두고 갑자기 연락하려니 느끼는 부담과 후회가 아니다. (정말로 아니다!) 내 삶이 다채로울 수 있었던 이유인 나의 사람들을 너무 익숙하게만 남겨둔 것을 이제야 인지했다는 것이 후회로운 것이다. 좋은 인연도, 나쁜 인연도 있지만 결국 모두 나의 삶의 배경이 되어 주었는데, 연기처럼 어느 순간 아스라이 사라져 잡지 못한 인연들도 있더라. 아쉬움이 어찌나 크던지, 너무 나에게만 집중하고 살진 않았나 이제서야 되돌아본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삶이 힘들 때 제일 힘이 되는 글귀’라며 본 글이 있다.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이 글귀야말로 인연을 무엇보다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도 익숙한 나머지 특별함을 잊었지만, 그렇게도 익숙하게 나를 사랑해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인연의 힘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인연이었겠지. 자연스럽게 fade-out 되는 배경이 되었을지 몰라도, 한 순간엔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꼭 이렇게 중요한 일을 앞둬야만 그 존재감이 커지는 “인연” 이라는 것이 얄궂다.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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