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의료봉사에서의 단상(斷想)

2024.07.24 14:44:20

릴레이 수필  제2615번째

밤이 오는 것을 날마다 보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어느새 시들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생의 의미를 망각하는 폐단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삶도 어느 순간부턴 지루한 일상적 요구에의 연속이 되어 버렸으며 더 지고한 삶의 의미가 틈입할 공간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어느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해외 의료봉사 관련 공문이었다. 우리에게는 이제 익숙해져 버린 의술은 흔히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 인술(仁術)이라고도 표현된다. 의료인이라는 역할로 지구별 어딘가 낯선 이들의 삶에 함께 설 수 있음은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나는 점차 놓치어만 가는 삶의 목적을 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해외의료 봉사에 자원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 여섯(서병무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 정상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대학원 총동창회장, 박주영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 윤규현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교수, 윤성빈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전임의, 안세휘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전공의)은 키르기스스탄 오슈(Osh)로 향했다.

 

키르기스스탄은 약 7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내륙국으로,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나라이다. 이 나라의 출생률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연스레 구순구개열 환자들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우리 일웅구순구개열 의료봉사회가 가야 할 이유이기도 했다. 일웅구순구개열 의료봉사회는 1968년부터 40년간 1000명 이상의 구순구개열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해온 민병일 서울치대 명예교수님의 호 ‘일웅(一雄)’을 따서 설립된 단체다. 설립 이래로 세계 각국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구순구개열 환자들을 위해 무료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다.

 

 

이번에 단장을 맡으신 서병무 교수님은 2008년과 2009년에도 키르기스스탄에 구순구개열환자를 수술하러 갔었던 바, 지금으로부터는 15년 전이다. 그 후 서로가 바쁜 업무 등 여러 사정으로 왕래가 계속 이어지지 못하다가,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대학원 총동창회장이신 정상철 회장님께서 다시 인연을 맺어주신 덕에 올해 다시 구순구개열 의료봉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 15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 어떻게 변해 있을까? 우리는 기다리는 환자들은 얼마나 많을까? 우리의 여정은 많은 걱정과 고민 속에서 준비되었다.

 

이번 의료봉사의 목적지는 키르기스스탄의 오슈 국립 병원이었다. 우리들만으로는 재정적이든 물리적이든 봉사 활동 추진에 한계가 있었지만, 오스템임플란트와 다른 회사들의 재정적 지원과 물품 지원 덕분에 이번 의료 봉사를 실현할 수 있었다. 또한 구강악안면외과의 예시에프(Eshiev Abdyrakman) 교수님이 물심양면으로 외지인인 우리를 도와주신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인천공항에서 오슈로 가는 직항은 없었으나, 수도 비슈케크에서 국내선을 이용하여 경유하는 방법이 있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찌는 듯한 날씨와 우리나라에 비해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 숨이 턱 막히기도 했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환우들을 생각하니 그 길이 결코 힘들지만은 않았다. 그 길은 마치 희망으로 가득한 “실크로드”로의 여정과도 같았다.

 

오슈 공항에 도착했을 때 예시에프 교수님의 사위이자 교정과 의사인 누르술탄 씨의 도움을 받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약 25명 이상의 환자들이 이번 일웅 봉사회의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약 10명, 많아야 14명 정도의 수술을 예상했으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의 환자였다. 당황하였지만서도, 우리는 태연할 수 있었다. 부족한 기구가 부족하면 빌려 쓰고, 수술 세트 소독은 우리가 직접 하면 그만이었다.

 

의료봉사 첫날 오전 8시부터 구순구개열 환자들이 우리 일웅구순구개열 봉사회의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하여 하나둘씩 내원하였다.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구순열과 구개열 아이들을 눈앞에서 본 후, 우리는 첫날부터 바로 수술을 시작해야 많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병원 시설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우리는 오후부터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키르기스스탄 오슈의 구강악안면외과 의사들 여럿이 우리의 진료를 참관하였다. 의료 강국이자 손기술이 뛰어난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찌는 듯한 더위와 좁은 수술방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며 무더운 열기를 더했으나, 우리의 열정을 사그라뜨리지는 못했다. 봉사를 떠나기 전 굳게 맺은 결의에도 불구하고, 실제 낯선 나라에서의 봉사는 예상치 못할 힘듦이 있다.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수술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처음 6명의 인원으로 시작했으며, 수술 진행에 3명이 필요하고 스크럽 간호사 1명을 포함하면 2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 많은 환자들을 3일 반 만에 모두 치료하려면 1개의 수술방 운영만으로는 불가능했기에 2개의 수술방을 운영했다. 그래서 스크럽과 제1조수, 제2조수를 한 사람이 동시에 맡는 장면까지 연출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웃음을 잃지 않고 환우들만을 생각하며 수술을 이어갔다.

 

 

3일 반 동안 6명의 의료진만으로 총 17명의 환우들에게 건강한 미소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 중 5명은 구순열 환자였고, 12명은 구개열 환자였다. 마지막, 우리가 떠나는 날 모든 환우와 어머니들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었다.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에 모든 환우들과 병원 정문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마무리했다. 또한 아타벡 (Atabek) 오슈 국립병원장, 구강악안면외과 과장 예시에프 교수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드리고 감사패를 받으며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되새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천애지각인 이곳, 키르기스스탄에서의 의료봉사는 찬연히 그 끝을 향해 달려간다. 새로운 만남의 시원섭섭함을 뒤로 하며, 나는 이곳에 우리가 심은 한 그루의 나무가 언젠가는 활기차게 가지를 뻗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언젠가는 그 나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고, 더 나아가 긍정적인 연쇄의 시발점이 되기를. 그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꿈을 꾸고, 매순간을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삶의 의미인 진정한 사랑과 나눔은 바로 이런 곳에서, 우리들의 행위를 통해 현현되는 것이리라.

안세휘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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