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도 가세한 지하철 역명 선점 ‘쩐의 전쟁’

  • 등록 2024.08.14 20: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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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부역명에 H치과의원 11.1억 원 낙찰 ‘역대 최고가’
의료광고 아니지만 홍보효과 커…개원가 경쟁 과열 우려
상업적 광고 변질 막고 공공성·신뢰성 유지토록 힘써야 


서울 2호선 강남역 역명에 모 치과의원 이름이 함께 표기될 예정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하철역 부역명 표기를 통한 홍보 전쟁에 치과의원도 가세하고 있는 것인데, 지나친 상업성을 앞세운 마케팅에 치과의료기관이 참여하는 것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더불어 해당 치과가 불법 의료광고로 주변에서 질타를 받아온 만큼, 마땅한 제동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교통공사가 최근 실시한 서울 내 10개 지하철역 ‘역명병기 유상판매’ 공개 입찰에서 강남역 부역명으로 역 인근에 위치한 H치과의원이 11억1100만 원으로 낙찰돼 역대 최고가에 이름을 올렸다. 이전에는 을지로3가역(신한카드)의 8억7000만 원이 최고가였다.


이로써 올해 10월부터 강남역은 ‘강남, H치과의원역’으로 3년간 역명병기가 이뤄진다. 재입찰 없이 한 차례(3년) 계약 연장도 가능하다.


역명병기 유상판매는 지하철역의 기존 역명에 부역명을 추가 기입하는 것으로 서울교통공사가 2016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서울 외에도 전국 각 지자체에서 동일 사업을 펼치고 있다. 부역명으로 결정되면 역사외부, 대합실, 승강장, 전동차 등에 위치한 역명판, 노선도, 표시기 7종과 더불어 하차역 방송 시 함께 안내된다.


전국 지자체에서 역명병기에 참여했던 의료기관은 총 100여 곳인데, 이 중 치과는 H치과의원을 포함해 대구 2호선의 경대병원역, 수인·분당선의 태평역, 인천 1호선의 지식정보단지역 등이다.


특히 이번 H치과의원의 부역명 낙찰은 서울 내에서 치과로선 최초 사례여서 관심이 집중된다. 기존에 역명병기 사업은 대기업, 대형 의료기관의 전유물로 간주돼온 만큼, 치과의원도 이를 통한 홍보 경쟁에 가세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3년간 11억1100만 원이라는 낙찰액은 동네 치과로선 엄두도 내지 못할 액수다. 다만 H치과의원이 700평 규모로, 한 건물 5개 층에 입점한 대형 치과이고, 이전에도 공격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펼쳐온 만큼 큰 자본력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입찰 시 명확한 세부기준 필요 지적 
이 같은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이 개원가 홍보 경쟁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록 역명병기는 법적으로 의료광고로 분류되지 않지만, 다수의 대중에게 노출되고, 자연스럽게 브랜드 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므로 홍보 효과는 광고와 다름없다는 이유다.


서울의 A원장은 “역명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넘어 현재도 지속 문제되는 불법 광고로 변주될 수 있음을 미리 인식하고 대처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H치과의원의 경우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랜딩 페이지 등 온라인, SNS 등을 통한 다수의 불법의료광고로 여러 차례 입방아에 오르내린 만큼 치과계 비판 목소리도 적잖다. 실제로 H치과의원은 불법의료광고 건으로 서초경찰서에 고발된 상태며, 치협 ‘의료법 위반 치과 신고센터’에도 다수의 신고가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관할 보건소에서도 불법의료광고와 관련해 행정지도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B원장은 “강남역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엄청난 상징성이 있는 만큼 치과계 전체 위상과 이미지를 고려해 행보에 신중을 기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 역시 과도한 상업성에도 불구하고 재정난 극복이라는 명목으로 공공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초 역명병기 사업은 이전까진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전문병원·150병상 이상 병원만 참여할 수 있었으나, 재작년부터 모든 의료기관으로 문턱이 낮아지면서 의원급 의료기관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 소지가 있는 기관이 역명병기 사업에 참여할 경우를 대비한 제동 장치는 미비한 실정이다. 입찰 참여기관을 심사하는 심의위원회에서는 ‘공서양속 훼손, 공사 이미지 저해 우려가 없는 기관’을 선정한다고 밝혔지만, 이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은 갖추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기관의 지역 발전 기여도, 공공성·편의성·접근성 등이 아닌 단순히 입찰 금액 순으로 역명병기가 결정되도록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에 치협도 역명병기가 상업적 광고로 변질되지 않고 공공성과 신뢰성을 유지하도록 힘쓸 계획이다.


박찬경 치협 법제이사는 “역명병기는 직접적인 광고로 간주되지 않아 의료광고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일종의 ‘회색지대’로 볼 수 있다”며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당국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고 심의위원회에 치과계 인사를 추천하는 등 의견을 더하는 방법도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상관 기자 skchoi@dailydent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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