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가난 비용

  • 등록 2025.03.12 16: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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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에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진료봉사 다녀온 이야기로 원고를 작성하며 말미에 ‘언젠가 다시 찾을 캄보디아’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말이 씨가 되었습니다. 캄보디아 진료 봉사로 또다시 부름을 받아 2년 연속 씨엠립을 방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력직으로 방문한 씨엠립의 풍경은 제법 낯이 익었고 더욱이 눈에 띄게 좋아진 숙소의 상태를 보고 나니 마음이 무척 편안했습니다. 다만, 이동 중 너무 많이 자서 그런지 첫날 밤에는 쉽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최근 제가 애용하는 인공지능 서비스인 ChatGPT를 열고, 한참동안 캄보디아의 건강 관련 정보를 물어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매일의 진료봉사를 마치고 돌아와 정보 검색하기를 며칠째 반복하다 보니, 문득 머리에 ‘가난 비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가난 비용은 빈곤으로 인해 개인과 사회가 직면하는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의미하는데, 가난이 단순히 저소득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 건강, 노동 생산성, 범죄율 증가 등의 다양한 문제를 유발하여 개인과 공동체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의 건강 관련 정보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Cambodia Demographic and Health Survey(CDHS)는 국제기구의 원조로 수행되고 있는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인구조사에 해당하는데, 5번째로 수행된 2021-2022년도 조사 보고서를 통해 캄보디아의 가난 비용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가령 캄보디아의 GDP 대비 보건의료 지출 비중은 10.9%로 아시아 개발도상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CDHS에서 조사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표인 영유아 사망률(5세 미만 1000명당 16명 사망), 모성 사망률(출생아 10만명당 산모 154명 사망), 발육(신장) 부진(5세 미만 아동의 22%), 저체중(5세 미만 아동의 16%), 신장 대비 체중 미달(5세 미만 아동의 10%)과 같은 건강 관련 대표적 지표가 좋지 못한 수준을 나타내는, 즉 보건의료 지출이 가난 비용으로 소모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다행인 것은 언급한 지표들이 과거에 비해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불평등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건강 관련 인프라와 시스템이 점차 확충되고 있기에 머지않은 미래에 가난 비용의 일반 건강 관련 영향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다만, CDHS에서 구강 관련 항목은 조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무척 아쉽습니다. WHO가 발표한 캄보디아의 Oral Health Country Profile에 의하면 2019년 기준 캄보디아의 1-9세 중 유치에 치료받지 않은 치아우식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45.5%, 5세 이상에서 영구치에 치료받지 않은 치아우식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31.4%에 이를 만큼 치아우식의 문제가 심각한데 반해 구강보건의료에 대한 국가의 연간 총 지출(공공 및 민간 외래진료에 대한)은 2만 달러, 치과의사 수는 만명당 0.9명에 불과합니다. 앞서 건강 관련 지표에서는 그나마 보건의료 지출이 존재라도 했는데, 구강건강은 고려사항조차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시듯, 구강건강은 전신 건강의 주요한 축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강 관련 대표적인 질환의 예방법은 너무나도 명확하기에, 국가적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면 가난 비용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구강건강의 개선을 이끌어내고, 더 나아가 전신 건강 관련 지표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활동하시는, 또 봉사로 오가시는 여러 선배님들께서도 진료를 계획하실 때에 예방 관련 접근방안을 한 번씩 고려해보시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승현 강릉원주대 치과병원 예방치과 전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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