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알람 소리에 눈을 뜹니다. 아니,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눈이 떠질 때도 많은 요즘입니다. 반복되는 하루의 시작. 익숙한 동작으로 세수를 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은 뒤 병원으로 향합니다. 매일 지나치는 길, 늘 눈에 들어오는 건물들과 나무들, 같은 시간에 도착해 여는 치과 문, 직원들과의 인사. 모든 순간이 마치 정해진 각본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원장실에 들어가 하루 동안 진료할 환자들의 차트를 검토하며 머릿속으로 진료 과정과 동선을 그려봅니다. 첫 번째 환자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마스크를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로 향합니다. 하루가 또 이렇게 시작됩니다.
언제부턴가 이런 일상이 무감각하고 당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다람쥐가 돌리는 쳇바퀴처럼, 멈출 수 없는 반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 특별한 사건도, 눈부신 변화도 없이 흘러가는 날들 속에서 문득,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버티고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의 치료를 시작하려는데 보호자의 굳은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진료가 시작되자마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작은 단계마다 설명을 요구하십니다. 치료 전 충분히 설명드렸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차갑기만 합니다.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아이도 평소보다 더 긴장한 모습입니다. 그 긴장이 예기치 않은 움직임으로 표출되기 전에, 분위기를 바꿔보려 노력해봅니다. 결국 치료는 잘 마무리되었지만, 마음 한편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집니다. 아이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진료에 최선을 다했지만 보호자의 마음까지 온전히 채워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반대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치료를 받던 아이가 치료 후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할 때, 그 말 한마디가 진심처럼 느껴지면 하루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순간이 됩니다. 보호자가 따뜻한 눈빛으로 “선생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해주시면, 그 짧은 말 한 줄에 쌓였던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립니다. 어느 날은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건네준 작고 소박한 선물이, 비싸지 않지만 마음이 담겨 있음이 너무나도 기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결국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일은, 결코 같은 날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술을 갖췄더라도, 진심 없이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진료의 현장입니다. 이처럼 치과안에서 지나가는 하루 안에는 수많은 감정의 굴곡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오해와 갈등으로 지치고, 또 어떤 날은 작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을 얻습니다.
‘살아낸다’는 말은 어쩐지 지치고 수동적인 느낌이 들지만, 그 안에는 하루를 끝까지 붙잡고 감당해내려는 용기가 숨어 있습니다. 버거운 순간도 있고, 무기력이 스쳐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늘 하루를 지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내는’ 하루하루가 쌓여서, 결국엔 ‘살아가는’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하루하루가 변화 없고 지루하다고 말할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일상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다시 웃으며 병원 문을 열고, 환자를 맞이하고,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보호자와 함께 아이를 위한 고민을 나눌 겁니다. 그렇게 매일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려 합니다.
‘살아내기’와 ‘살아가기’는 단지 글자 하나 차이지만, 그 사이에는 다른 마음의 방향 있습니다.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그려나가느냐에 따라 같은 하루도 전혀 다르게 빛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살아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작은 선택과 태도가, 우리를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렇게, 이 치과의사의 길 위에서 우리 모두 서로를 격려하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