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인 칼럼(1)>
진료권과 건강권

2000.09.02 00:00:00

『대중을 떠난, 예술인들만 위한 예술은 사기다』 세계적인 재미(在美)예술가 백남준씨가 했던 말이다. 예술 행위에 있어서 수용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한번쯤 깊이 생각하게 한다. 수용자를 생각하지 않는 예술 행위는 무(無)의 상태를 넘어 사기라는 범죄의 단계로 들어간다는 얘기인데, 이쯤 되면 예술 행위의 주체와 수용자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도 분명 음악인의 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비록 악기라고는 기타나 하모니커 조차 다루지 못하지만 음악 듣기를 무척이나 즐기기 때문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그 순수하고 묵직함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가 보기도 하고, 때로 서태지의 경쾌한 노래로 피로를 풀기도 한다. 이렇듯 나도 음악이란 예술에 당당히 참여하고 있으며, 연주자나 작곡가, 가수들과는 참여 형태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면 다소간 욕심이 섞인 강변이 될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나는 의권(醫權)에 대한 얘기를 풀어보고 싶다. 의권은 한 마디로 의료부문에서의 인권이라 할 수 있다. 의권, 그것은 흔히 의사들에게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러한 의권은 존재할 수도 없고 설혹 존재한다 해도 아무런 효용이나 의미도 없는 것이다. 환자 없는 의사는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만큼이나 당연히 환자도 의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의권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하는 진료권이다. 이는 매우 고유하고도 귀한 권한이다. 의료인 자격이 없는 이의 진료행위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위중한 환자를 위해 의사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를 치유할 권리가 있다. 그런면에서 진료권은 의사의 권리인 동시에 중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넘어가는 의권이 환자의 건강권이다. 건강권이란 환자가 자신의 건강을 능동적으로 지키고 회복해 나갈 권리인데, 여기에는 자신이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앞으로 받을 치료와 먹을 약의 성분은 무엇인지 알 권리도 포함된다. 이러한 권리와 동시에 환자에게는 의사의 처방과 지시에 따르고 금지사항을 지킬 의무가 있다. 이렇듯, 의권에는 환자와 의사 양자의 권리와 의무가 융합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환자가 약 먹기를 게을리 하는 것도 의권 포기, 의무 불이행이고, 의사가 환자에게 정확한 진료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환자를 주눅들게 만든다거나, 성실하지 않고 주먹구구로 진료하는 것 역시 신성한 의권 포기, 의무 불이행이다. 그것은 마치 연주자가 자신의 공연을 보러온 관객을 위한 연주를 하지 않는 것과 관람석의 청중이 연주감상에 몰입하지 않고 소란을 피우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음악은 청중과 연주자의 하모니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사 어느 것이나 그렇듯, 특히 상식에 가까운 일들일수록 언뜻 보기엔 쉬워 보여도 기실 그 실행의 속내는 어렵기 마련이다. 바쁜 일상속에서 시간 맞춰 약을 먹는다는 것 하나만 해도 만만치 않다. 의학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진료, 치료상황을 정확히 안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고압적인 의사를 만났을 경우에는 환자입장에서의 의권 향유는 아예 불가능해진다. 의사 입장에서도 의권 수호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상에서 어느 한 순간도 환자의 건강을 위하여 최선을 다 해야만 한다. 감정이나 빈부를 염두에 두지 않아야 되는 일이다. 일반인들은 그러한 모습의 의사를 원한다.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의사들에게도 ‘선생님’이란 경칭을 붙이는 것은 그러한 기대의 반영인 것이다. 얼마전 ‘허준’이라는 드라마가 시청률 65%를 오르내리며 큰 대중적 반응을 얻었던 것도 현실에서 충족시키기 어려웠던 기대의 대리충족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 드라마에서 나병의 전염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허준, 전염병 환자의 피고름을 직접 입으로 빨아내던 의사 허준, 자칫 대역죄를 쓸 위기마저 자처하며 환자를 돌보던 성의(聖醫) 허준처럼 의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실속에서도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 어떠한 권리도 자신의 전 생명력을 던지지 않는 한 지켜내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 속에서 때로 무대 위에서 연주자가 되기도 하고 관객이 되기도 한다. 그 하나하나의 공연에서 건강한 관계를 이루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낸다는 것, 아무리 어려워도 그것을 해내야하는 이유는 그러한 노력 자체가 이미 우리들 모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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