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수어(手語)를 공부한 지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매주 월요일, 수요일마다 치과 진료가 끝나는 대로 경기도수어교육원을 찾아가 수어를 배우고 있는데, 수어를 배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주변으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은 다소 부끄럽지만 ‘대단하다’거나, ‘약자를 생각하는 모습이 멋지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수어를 배우게 된 건 그렇게 약자를 위하고 대단한 모습으로 비춰지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치과대학 원내생 시절 나에게 치과병원은 출퇴근이 가능한 군대와도 같았다. 병원에서 원내생은 마치 부대에 갓 전입한 이병과도 같았는데, 숨 막히는 진료 현장에서 같은 조 동기들과의 이야기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조용하면서도 부산스러운 상황에서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간 삽시간에 주목받기 일쑤였고, 이 때 불현듯 든 생각이 ‘수어를 사용하여 대화를 하면 어떨까’였다. 예상외로 수어는 굉장히 훌륭한 대화 수단이었다.
처음에는 같은 조 동기들과 ‘필요하다’, ‘끝나다’, ‘아직’ 등의 간단한 수어 위주로 사용하였는데, 사용하기 전과 비교하여 의미전달이 명료하고 신속해 매우 만족스러웠다. 특히, 소아치과에서 수어는 매우 유용했는데, 평소 소아치과 외래는 환아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 멀찍이 서있는 동기에게 ‘끝났냐?, 필요하다’ 수어를 하면 손이 비는 동기가 바로 뛰어와 돕곤 했고, 수어는 우리 조에게 매우 정확하고 신속한 대화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쭉 수어를 배우고 있고 이제는 수어로 어느 정도 일상대화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자신한다.
한편, 수어를 배우기 위해 수어교육원을 다니면서 청각장애인들이 치과 진료를 받을 때 진료와 관련해 의사소통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청각장애인이 병의원을 이용할 때 수어통역사와 동행하지만, 그 수가 매우 적어 치과 치료보다는 당장 시급한 전신질환 위주로 수어통역사가 우선 배정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청각장애인들은 참다 참다 더 이상 못 견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치과에 방문하게 되고, 치과의사 입장에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대표원장님께 수어 진료와 관련해서 조심스레 건의를 드렸다. 지금껏 배워 온 수어를 진료에 적용해 의료진이 직접 수어를 쓴다면 농인들도 청인처럼 치과진료에 접근성이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다만, 새로 시작하게 되는 수어진료가 기존의 예약진료에 영향을 주진 않을까 걱정이 되던 찰나에 대표원장님께서는 너무나 좋은 일이라며 지지해 주셨고, 아마 이 글이 올라갈 즈음이면 우리 의원에서는 이미 수어진료를 시작하고 있을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렇게 머릿속으로 생각해 오던 것을 몸소 실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표원장님의 무한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매사 모든 질문에 귀 기울여 경청해 주시고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고민해주시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지지해주시는 덕에, 봉직의로 일하고 있지만 우리 치과에 더욱 애사심과 주인의식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이 글을 빌려 다시 한 번 대표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러한 지지가 헛되지 않도록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 수어진료라는 불씨를 잘 살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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