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인 칼럼(2)>
훈훈한 명절을 위하여

2000.09.09 00:00:00

‘하룻밤에도 기와집을 몇 채나 지었다 헐었다 한다.’ 라는 옛말이 있다. 언젠가 TV에서 자신의 보금자리가 될 아파트를 처음 산 주부가 집안을 어떻게 꾸밀까 하며 매일 잠 못 이룬다는 내용의 방송을 보고 참으로 흐뭇하고 보기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가 가진 재산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여러 모로 궁리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유형, 무형의 재산을 최대치로 사용하기 위한 노력이란 면에서 건전한 소유욕구, 효율적인 성취욕구로 볼 수도 있다. 성취욕구에 의한 소유는 일면 사람을 자유롭게도 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기와집을 짓든 헐든 내 마음대로 하며 소유권이 주는 자유를 구가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 한국 사람들 대개가 예로부터 성취욕과 그에 따른 모험심이 강한 데에는, 자신의 의지나 판단으로 세상을 헤쳐가려는 자유에의 의지가 숨어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우리들의 일상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얽혀갈수록 바로 그 개개인의 자유에의 의지들이 곳곳에서 마찰을 빚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욕망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며 충돌하는 것이다.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 땅을 가졌다고 해서 제 마음대로 그 소유권만을 생각하고 소위 개발을 한다면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내 소유권 행사에 의해서 주변의 환경권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특히 공동체적 삶의 체취가 깊이 배어있다. 우리 어머니, 우리 집, 우리 회사, 우리 나라...... 한가위 보름달 뜨면 가족·친척들과 함께 오르던 마을 뒷동산, 새벽 덜 깬 잠을 날리며 밤새 모인 자연의 기운을 전해 주던 뒷마당 우물 한 모금, 그 우물을 돌아설 때 씨암탉이 방금 낳은 따뜻한 달걀을 전해주시던, 달걀보다 더 따뜻했던 할머니의 손. 공동체적 삶이 우리에게 남긴 이 고향의 향내 때문에 우리는 해마다 이맘때면 열 몇몇 시간이 걸려도 ‘기어코’ 내 뛰놀던 그곳으로 가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자유로운 부의 추구는 우리 모두가 가진 희망적 의지이다. 그러나 사적 소유권을 행사할 때에는 반드시 주변 공통의 환경권을 의식해야 한다. 이는, 공동체가 무너지면 개개인에게도 자유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제는 부의 개념과 근간이 바뀌어 가는 시대이다. 예전에는 물질이 부의 전부였지만, 보다 중요한 부의 근저가 이제는 지식과 문화·정보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 모두 사적 소유권이나 집단의 권리행사에 의한 공동체 파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적·문화적 가치와, 아울러 타인의 환경권을 새삼 진지하게 되돌아봐야할 시점이라는 얘기이다. 마음 속 기와집은 얼마든지 어디든지 언제든지 짓고 헐어도, 실제로는 공동체적 환경에 맞는, 시대에 맞는 기와집을 지어야 할 것이다. 올 추석, 인간의 소유욕구는 끝이 없는데 소유기간은 한계가 있음을, 내 속에 배어있는 공동체적 체취와 은혜를 한번쯤 짚어보고, 고향에 간다면 어느 때보다 가슴 훈훈한 명절이 되지 않을까. 강대인 USC 사회복지대학 부교수·치과의사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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