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이란

  • 등록 2025.11.26 15: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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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대 이상의 호의나 대가를 받은 경우엔 사정이 다르겠지만, 의도만 순수하다면 선물자체는 일단 받으면 좋다. 평생 치과진료를 하면서 나를 믿고 찾아오는 단골환자에게 늘 고마움을 갖고 있다. 개원 초엔 달력이나 타월을 선물하기도 했고 수시로 칫솔세트를 선물하기도 했다.

 

반대로 환자로부터 받은 선물 중에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았다. 여기는 시골이라 5일 장날에 할머니의 계절에 따른 나물이나 과일을 담은 봉지, 간식으로 먹으라며 빵 한 개 우유 한 팩이 정겨웠다. 예전에 가을 무렵 연로하신 할아버지께서 묵직한 감나무 가지를 꺾어 오셨다. 지금 먹으면 떫으니까 벽에 걸어두면 홍시가 된다며 그때 먹으면 된다고 하셨다. 먹기가 아까워서 말려 장식용으로 쓰고 싶었다. 곶감처럼 딱딱해 질 줄 알았는데 물렁하게 익어서 장식용으로 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의 정성을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실물보다 작은 나무지게를 손수 만들어 주신 환자와 같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선물 등이 있었다. 이러한 하나하나가 나중에 생각지도 않았던 글쓰기 소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렇듯 작은 선물의 경우는 인지상정인 것 같다. 개원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환자와 자녀분 그리고 손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포의 환자를 보며, 우리직업이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전국에서 평균연령이 최고로 높은 지역이어서인지 여기 군위는 고령 환자가 많다. 칠, 팔순을 넘긴 환자분들도 상당히 많고 구순을 넘긴 환자를 볼 때면 남다른 느낌을 받는다. 필자가 개원초일 때 중년이던 환자가 긴 세월을 거치면서 구순을 넘기면서 이젠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표정을 보게 된다. 필자도 그 과정을 겪고 있구나 하며 세상을 보는 눈이 한층 여유가 있어지고 느긋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수십 년의 애환들이 경험과 어우러져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우리세대엔 선물 중에 가장 의미 있고 귀한 선물이 책이라고 알고 있다. 필자도 책 선물을 자주 받는데, 주신 분의 성의를 생각해서 눈이 침침해도 다 읽게 된다. 요즘시대엔 다 필요 없고 그저 현금선물이 최고라 해서 좀 씁쓰레한 생각이 든다.

 

필자의 경우, 시집을 출간할 때마다 팔리지도 않는데 왜 비용 들여가며 책을 내느냐고 아내는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 단골환자와의 교감을 나누는데 상당한 매개체가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요즘처럼 종이책 읽기를 꺼려하고 각종 SNS나 인터넷 매체에 익숙한 시대여서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한 자리에서 수십 년간 큰 사고 없이 진료를 하며 함께 해 온 수많은 환자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주로 지인들이나 환자에게 선물용으로 많이 이용했다. 손수 서명해주는 한 권의 시집을 가슴에 안고 나가는 모습이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낀다. 이따금 환자가 후에 내원해서 감명 받은 부분을 얘기해 줄 때 진정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고향인 군위에서만 평생 진료하다보니 주변 어르신들이 필자의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변화를 다 지켜본 터라, 글의 공감도가 훨씬 높아서 표현들이 눈에 훤히 다 보이는 것 같다며 웃음을 나누기도 한다. 언제 이 많은 글을 썼냐며 한껏 추켜 주기도 하고, 계속 좋은 글 많이 쓰라며 격려해 주신다. 다양한 계층의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무명작가여서 힘들다는 것도 깨닫는다. 단골 환자와 지인을 통한 독자가 있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며, 의미 있는 한 줄의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한다.

 

오늘도 동갑쯤 돼 보이는 단골 환자가 손녀를 치료하러 내원했는데 그 손녀를 보니 예전 필자의 아이가 아기일 적 생각이 난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진심으로 나의 팬이라고 했다. 그 마음이 감사해서 진료 후 책 한 권 선물했다. 너무 기뻐하고 감격해하는 모습을 보며 돈으로 살 수 없는 황홀한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역시 환자와 함께 할 때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특히 치과진료 그 너머의 함께 공유하는 일상의 기쁜 순간들...

 


소중한 것이란

 

선물 받은 시집 한 권
봄날 창가 햇살처럼
스며드는 따뜻한 미소

 

책장 넘길 때마다
자연의 소리 들으며
세상 모두를 안는다

 

소중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것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시간마저 달콤해지는
바로 지금 이 순간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광렬 이광렬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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