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와 금수저

  • 등록 2025.11.26 15: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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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윤 칼럼

누구는 금수저로 태어나 풍요로운 교육과 기회를 당연하게 누리고, 또 누군가는 흙수저로 태어나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해서 증명해왔습니다. 출발선이 곧 도착선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런던시장 사디크 칸, 엔비디아의 젠슨 황, 과학의 상징 패러데이는 모두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그들은 세상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반면 뉴욕시장 맘다니, AMD회장 리사 수, 맥스웰의 방정식으로 유명한 맥스웰처럼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자랐더라도 그 자산을 기반으로 더 큰 가치와 영향력을 창출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대비는 “금수저냐 흙수저냐”보다 “기회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인류의 오래된 교훈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최근 미국 뉴욕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는 사상 최연소 뉴욕시장과, 최초의 인도계 무슬림 출신으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맘다니의 당선이 확정된 뉴욕에 앞서 런던은 파키스탄계 변호사인 사디크 칸 시장이 3연임중입니다. 지구촌 양대 금융 수도의 시장직을 남아시아계 무슬림이 석권하게 된 것입니다. 칸은 선거전날 블룸버그 TV인터뷰에서 “우리 둘은 이민자 커뮤니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도시가 직면한 불평등에 맞서 싸운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맘다니의 승리를 기원했습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인종, 종교적 배경을 가졌고, 양당제중 진보정당에 소속됐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온 궤적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버스운전사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권 변호사를 거쳐 3선 시장에 오른 칸은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입니다. 그가 교통부 장관이나 노동당의 런던 시장 후보가 되는 등 주요사건마다 영국언론은 흙수저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흙수저 출신 정치인의 성공담을 조명했습니다. 반면 맘다니는 스타경제학자, 영화감독 사이에게서 태어난 금수저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탈식민주의 연구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마무드 맘다니 컬럼비아대 교수이며, 어머니는 영화 “몬순웨딩”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인도계 영화감독 미라 나이어 입니다.

 

7100조원의 시가총액,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중 하나로 인공지능 혁명의 핵심 인프라를 독점적으로 제공하며 기록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회장과 시가총액 560조원의 AMD를 회생시킨 리사 수는 세계최대 파운드리업체인 대만의 TSMC가 있는 타이난성 출신이라는 공통점과 세계최대의 반도체 CEO라는 공통점, 젠슨 황의 어머니와 리사 수의 외할아버지는 형제관계로 5촌간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하지만 둘의 성장과정은 흙수저와 금수저의 삶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일 중독자로 악명 높았던 젠슨 황은 이민자의 아들로 청소년기에 세탁소와 식당 일을 도우며 자랐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엔지니어로서의 꿈을 놓지 않고, 결국 엔비디아를 창업해 인공지능 혁명의 중심에 섰습니다. 반면 리사 수는 대만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과학자의 손녀이자 공학자 부모 밑에서 자란 안정된 배경 속에서도 그녀는 안주하지 않았고,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시가총액 560조의 AMD를 회생시킨 ‘반도체의 여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흙수저와 금수저의 대비되는 다른 인물로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있습니다.


패러데이는 전자기장을 발견하였고,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 수학을 몰랐음에도 물리학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중에 하나로 평가 받는 전기 실험 논문(Experimental Researches in Electricity)을 방정식 하나 없이 저술하였습니다. 그는 19세기 물리학계에서 가장 훌륭한 실험 과학자이자 위대한 선지자 였습니다. 패러데이는 정신의 눈으로 물리학을 보고 정신의 눈으로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영국 1파운드 동전에 패러데이의 초상이 새겨진 기념주화가 발행될 정도로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였고, 1786년 쇠락해가는 대장소를 떠나 런던의 빈민가 뉴잉턴 버츠에 정착하였습니다. 하지만 패러데이의 아버지는 돈벌이는 시원찮았고 설상가상으로 건강마저 나빠져, 가정형편상 아주 기초적인 교육을 받은 후 13세에 제본소에 취직하게 됩니다. 패러데이는 제본소에서 접한 책들을 통해서 진리의 탐구자가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실천하고 실험하는 패러데이의 성향이 오늘날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 1순위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패러데이의 실험을 이론화함으로써 응용의 길을 터놓은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힘의 선 개념을 수식으로 정리, 네 개의 편미분 방정식으로 표현하여 그 유명한 맥스웰 방정식을 만들었습니다. 이 방정식은 오늘날 모든 전자기 이론(전자공학, 통신, 광학, 물리학)의 근본이 됩니다.


특히 그는 전자기파의 존재를 예측했고, 이는 후에 헤르츠의 실험과 마르코니의 무선통신으로 실증 되었습니다.


20세기 가장 훌륭한 과학자 아인슈타인 조차도 “내가 어깨위에 서 있는 거인은 맥스웰”이라고 말할 정도로 맥스웰은 전기, 자기, 빛을 통합한 전자기 이론의 창시자이며, 그의 방정식은 현대 물리학, 공학, 통신기술의 토대가 된 인류 과학사 최고의 업적중 하나입니다.


스코틀랜드 중상류층 지주집안에서 태어난 맥스웰은 아버지가 맥스웰이 직접 물리 실험을 할수 있도록 소규모 실험실을 만들어 주기까지 했을 정도로 패러데이와 달리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전형적인 흙수저 마이클 패러데이와 전형적인 금수저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은 서로 대비되는 삶이지만 맥스웰은 평생 패러데이를 깊이 존경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직관과 수학, 실험과 이론의 이상적 조화를 이루며 현대 물리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중국 개방화의 선구자 등소평의 흑묘백묘(黑猫白猫)라는 유명한 어록이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사구시적 사상입니다.


인류와 사회에 이바지 한다는 방향이 같다면 흙수저이건 금수저이건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어려운 역경을 헤치고 성공한 흙수저를 더 높게 평가하고 금수저는 좋은 여건에서 스타트 라인이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폄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풍요로운 안정된 삶에서 자란 금수저들은 절박함과 열정에서는 흙수저 보다는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도전보다는 안정을 택합니다.


스포츠에서도 스타선수들이 많은 팀이 우승할 확률이 높지만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모래알 팀워크로 지리멸멸하는 경우도 많이 봐왔습니다. 좋은 선수들 때문에 우승했다는 여론으로 감독의 능력을 빛바래게 하지는 말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흙수저 감독들보다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지만 스타들을 융합시키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흙수저의 불굴의 정신, 금수저의 특권에 대한 책임정신, 모두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혁신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흙수저와 금수저의 대립이 아니라 서로의 역할이 어우러질 때 인류문명의 발전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쾌거를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인생은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인류의 진보라는 도착점은 한곳이었다는 역사의 교훈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평화로운 휴일 오후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상윤 하상윤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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