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 삶>
지홍스님·조계사 주지

2000.09.30 00:00:00

이 가을 성숙한 삶의 모색을 위해 지난 여름 무너지고 헤쳐진 마음의 잔해들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스며든다. 번거로운 일상사 속에서도 외로움, 쓸쓸함이 묻어남은 어쩔 수 없다. 얼키고 설킨 삶들, 그 사이사이를 놓치지 않고 끼어 드는 바람 같은 고통들, 그 여름의 끝에서 나는 홀로 여행을 떠났다. 내 생(生)앞에 오롯이 혼자 서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사방에서 몰려드는 외로움에 나는 형체도 없는 듯하다. 삶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빛을 잃어가던 내 지난 시절의 꿈의 파편들, 언젠가 닥쳐올 죽음(死)이 불러일으키는 未知에의 불안 때문에 가슴 한복판에서 서걱서걱 마른 바람이 인다. 이제 부서진 것들이 모래알처럼 서걱대는 가슴을 안고 강가에 서 있는 중년이 되었다. “진리는 그대 내면에 있다. 그것은 그대 내면의 핵심이다. 그대만이, 그것을 꿰뚫을 수 있다. 다른 누구도 그대와 함께 갈 수 없다. 길은 완전히 홀로 있음 속에서 여행해야 한다. 스승은 그것을 알기에 그대를 홀로 남겨질 여행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사십이장경-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홀로 내면의 허욕이 없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공간에 이르러, 그것을 모든 존재와 나누는 일이라고 한다. 완전히 홀로 남겨질 이 작업은 지난(至難)하고 외로울 것임에 분명하다. 세상살이 또한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사람은 태어나고(生), 또 나이를 먹어(老), 병이 들고(病), 죽고(死) 하는 삶의 여정 속에서 철저하게 혼자 놓이게 된다. 또 모든 존재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가며 사는 것이 사람사는 일이라 하지만 같은 시간과 공간을 어느 누구와도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 그 생의 고비마다 홀로 남게 됨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여진 삶의 실제(實在)이며 진리이다. 세상살이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 같은 만남과 헤어짐에 홀로 남는 일에 길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이제 기대서지 않는 나무처럼 홀로 서야 한다. 이때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바람처럼, 또 어떤 그림자 같은 흔적도 남기지 않는 거울처럼 아주 가볍고 맑게 일상 속에 홀로 섬은 아름다운 삶의 결을 이루리라. 그 사이사이 배어드는 쓸쓸한 느낌조차 우리 생에 중후한 무게를 싣는다. “그대의 가슴이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대가 삶과 삶속에 있는 괴로움을 체험했을 때, 그대가 삶에서 고통받고 절망을 이해했을 때, 그대는 건너편 언덕으로 움직여 갈 준비가 된 것이다. 성숙한 사람이란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를 볼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사십이장경- 삶을 들여다보고 그 밑바다 구석까지 이해할 수 있는 지혜가 갖추어져 있을 때, 이기적인 허욕에 허둥대고 갈등하지 않는 한가로운 마음이 되어 세상사에서 자유로울 때, 저 평화의 언덕에 이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때론 행복하고, 때론 괴롭고 쓸쓸한 바람을 일으키는 인간의 삶이지만, 그것은 이쪽 언덕(此岸)에서 저쪽 언덕(彼岸)에 이르는 길목위에 엄연히 실제한다. 우리는 지금 외롭게 그 길목을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늘 생각한다. 내 생이 여울목을 지나 한적한 곳에 이를 때마다 뒤를 따르는 회한(悔恨)을 거리를 온몸으로 기어 생을 체감하는 장애인, 그가 도피를 일삼는 나의 비겁함 앞에 빨간 신호등을 켠다. 나는 그 앞에 멈춰서야 한다. 그 타성으로부터의 대전환을 위해 한겨울 내면의 충일(充溢)을 위해 맨 몸이 되어 버린 나무, 나는 그 앞에서 허울의 옷을 벗어야 한다. 세상을 사는 일은 하늘을 날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새의 관념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버러지처럼 온몸으로 기어 느껴야만 한다. 삶이 투명해질 때까지...이때 비로소 비록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서로 따뜻한 배려와 위로로 진정 사람 사는 세상에 살게 된다. 외로 난 길을 바랑 하나 짊어지고 홀로 걷는 수행자가 있다. 그는 바람이 두드리는 문소리에도 시야를 어지럽히는 잎새들 사이에서도 홀로 충만(充滿)하다. 그의 가슴은 이미 사랑과자비의 빛으로 가득하기에. 지 홍(至弘)스님 약력 ·학력 86년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철학교육과 수료 ·경력 71년 광덕스님을 은사로 득도 71년 범어사에서 사미계 수지 74년 쌍계사에서 비구계 수지 81-90년 불광사에서 포교활동 91년 금강정사 창건, 주지 92년 불교문화교육원 설립 94년 조계종 개혁회의 의원 및 조계종 포교부장 현재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및 포교분과위원장 조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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