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멈춤이 남긴 것

  • 등록 2026.01.28 15:2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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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요즘 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퇴근길에 우회전을 하면 신호 타이밍이 잘 맞는 사거리가 있다. 그날도 평소처럼 바로 우회전을 해서 지나가려던 참이었는데, 사거리를 천천히 건너고 계신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도 춥고, ‘그냥 다음 신호에 건너지 뭐’라는 생각으로 잠시 기다렸다가 사거리로 향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우회전을 해서 사거리에 도착했을 때, 사고가 나 있었다. 신호를 마지막으로 건너던 내 앞 차와 예측 출발을 한 오토바이가 부딪힌 사고였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는 너무 놀랐는지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약 우회전을 조금만 더 일찍 했더라면, 그 어르신들을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사고의 당사자가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어르신들을 배려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분들이 나를 도와주신 셈이었다.


배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consideration”이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하지만, 뉘앙스로는 “solicitude”가 배려의 의미에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일상에서는 배려 깊은 사람을 두고 “kindness”(친절함)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프랑스어는 “배려”를 흔히 “l’attention”이라고 표현하는데, 상대를 주의 깊게 살핀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한편 ‘친절’은 국어사전에서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함, 또는 그런 태도”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친절과 배려의 차이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친절이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해 주는 태도라면, 배려는 상대를 생각해 자신의 행동을 조금 바꾸는 선택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여러모로 배려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는 요즘이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개인의 역량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함께 진료하는 동료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 그리고 환자와 가장 먼저 마주하는 데스크 직원들까지, 진료실은 늘 여러 사람의 호흡으로 움직인다.


특히 치과는 다른 분야에 비해 팀워크의 비중이 훨씬 크다. 진료의 시작부터 끝까지 누군가의 손과 눈, 그리고 타이밍이 함께 맞아야 한다. 치과 진료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전제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최근 연말을 지나며 많은 개인 일정과 여러 업무가 겹치다 보니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자주 체하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컨디션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 날들 속에서 함께 일하는 원장님들과 스태프 선생님들의 배려가 더 크게 느껴졌다. 특별히 무언가를 말하지 않아도,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를 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배려는 늘 그런 방식으로 존재해 왔던 것 같다. 누군가 힘들어 보일 때 한 발짝 먼저 움직이는 일, 혹은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이해해 주는 일들. 그런 순간들은 당연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배려는 결국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말보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태도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런 배려가 오가는 곳에서는, 함께하는 시간과 관계가 조금 더 단단해진다.


배려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치과 뿐만 아니라, 소속되어 있는 학회들까지 돌아보면, 나는 참 좋은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역할은 달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만큼은 닮아 있다.


그날 퇴근길에서의 잠깐의 기다림 역시, 돌이켜보면 그런 배려의 연장선이었을지 모른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계시던 어르신들을 기다린 것은 의식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순간적인 판단에 가까웠고, 그 짧은 멈춤 덕분에 나는 사고를 한 발짝 비켜 설 수 있었다.


배려는 이렇게 늘 거창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누군가를 위해 잠시 멈추는 일, 상대를 먼저 떠올리며 행동을 조금 바꾸는 일. 그 작은 선택들이 때로는 관계를 지키고, 때로는 삶의 방향을 바꾼다.


그런 배려들이 내 일상 곳곳에 스며있다는 사실을 더 자주 느낀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진료실을 벗어난 여러 자리에서, 그리고 그날의 사거리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었던 순간들 속에서. 그래서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많은 배려들에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배려는 누군가를 향한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결국은 소리 없이 삶의 틈을 메우며 우리를 지켜 주는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다솜 치협 국제위원회 위원, 대한여성치과의사회 정책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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