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 삶>
더불어 사는 삶을 연습하자
<지홍스님·조계사 주지>

2000.10.21 00:00:00

얼마 전 가슴 서늘한 소식을 접했다. 번잡한 지하철 안에서 노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 있는 아이에게 노인은 꾸지람을 했나보다. 꾸지람에 화를 참지 못한 아이는 같이 동행하던 가족들을 지하철 안에 놔두고 내리는 노인을 뒤따라가 꾸지람의 이유를 다그쳐 물었다고 한다. 곧이어 아이는 노인을 밀었고, 노인은 층계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후 노인은 목숨을 잃었다 한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이기주의 실상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예전에는 다소 버릇없는 아이들의 행동들도 오래 살아온 아량으로 받아들여지고 또 아이들은 어른들을 의지하고 공경하여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서로를 이해하려하지 않는 사람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더불어 같이 사는 일에 서투르고 귀찮아하기 시작했다. 요즈음 우리들의 가정에서도 자기만을 내세우는 각자의 생각이나 주장이 개인의 방만큼이나 따로따로이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생각에 얽매여 상대의 말을 들으려하지도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자기, 내 것 등 나만의 것으로 가득하여 다른 것에는 마음 쓸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 사이에 세상은 더욱 삭막해지고 있다. 죽은 지 며칠이 지나 발견되는 외로운 노인이 있는가 하면 죽은 엄마를 집에 놓아두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있다. 과연 이들에게 이웃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에는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존재들이 다양한 생존 방식을 가지고 함께 살고 있다. 이 같은 수많은 존재들과 더불어 서로 어긋나지 않게 조화를 이루며 사는 일이 순리(順理)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존재들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진정한 나의 삶이 영위된다는 사실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도 공기나 물, 빛 등 삶의 기본적인 요건의 충족 없이는 살 수 없으며, 아무리 잘난 사람도 혼자서는 완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건강한 자연환경을 근간으로 하여 서로를 존중하며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는 일로 함께 어우러질 수 있을 때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비록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고 또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자신에 갇히는" 이기심만 벗어나면 우리의 삶은 진실로 평온하고 인간다워질 수 있다. 바다를 끼고 한가롭게 자리한 어느 남녘의 조그마한 마을이 있다. 온 마을을 비추고도 남을 커다란 보름달. 아마 음력 대보름날이었을 것이다. 온 동네를 가득 메운 지신놀이패들의 풍물 잡히는 소리에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흥겹다. 그런 사이 쌓였던 삶의 응어리들이 자연스레 해소되었으리라. 사소한 일로 다투었다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았던, 그저 울타리만 있을 뿐 언제나 열려진 사립문처럼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전한 문화와 가치의 共有로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다. 극단적인 개인이기주의에서 탈피하여 모든 존재들과의 공생공영(共生共榮)의 삶으로 돌아가 의지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일로 이웃과 함께 하고, 소비적인 생활을 줄이는 일로 훼손되어 가는 자연을 살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일들로 세상과 함께 해야 한다.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이러한 작은 행(行)들이 갈등과 대립을 넘어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 어느덧 나에게 집착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이웃의 기쁨이 나의 기쁨으로, 또 그들의 슬픔이 나의 슬픔으로 느껴지는 큰마음이 자리하게 된다. 단풍축제를 막 시작하려는 산자락에 여기저기 노란 호박꽃이 함초롬히 물기를 머금고 있다. 그 사이로 난 작은 길은 산으로 이어지고, 한 사람이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다. 뒤따르는 강아지의 몸놀림 또한 싱그럽다. 아주 한가롭고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더불어 살고자하는 삶들의 지향은 이처럼 자연과 함께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아닐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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