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날마다 행복 만들기
<지홍스님·조계사 주지>

2000.10.28 00:00:00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이 새벽 미명 속 휴식을 아쉬워하지 않듯이, 온 하늘을 자줏빛으로 물들이는 석양이 밀려드는 어두움을 두려워하지 않듯이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매번 새롭게 ‘오늘’에 살아야 한다. 거기에는 어제를 추억하는 아쉬움도, 또 내일을 기대하는 환상(幻想)도 없어야 한다. 오직 ‘지금 여기’에 내가 있을 뿐이다. 다가왔다 사라지는 ‘오늘’마다 매번 새롭게 사는 삶은 아름답다. ‘지금 여기’ 그리고 많은 인연들 속에 내가 있다. 이것이 실제 우리가 행복을 이루어 가는 삶의 현장(現場)이다. 거기서 순간순간 잔잔한 기쁨으로 즐거워하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고뇌하기도 한다. 허나 생의 전부가 고통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행복의 불씨는 살아 숨쉬고 있다. 행복은 칠흑 같은 밤하늘에 점점이 박혀있는 별들처럼 일상생활 속에 여기저기서 빛나고 있다. 그것은 낮은 시선으로만 눈에 띄는 삭막한 도심의 노란 민들레처럼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발 밑을 살피는 지혜로움으로 발견된다. 문제는 우리들의 무디어진 감성에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삶 속에 깃들인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서 행복을 느끼며 그것들을 삶의 바구니에 담아 미래의 행복까지 마련할 줄 안다. TV 프로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보았다. 40대 중반의 그녀는 위암 말기 환자이다.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아내로, 또 엄마로 온 가족을 사랑하면서 성실하게 살아온 그녀이다. 그녀는 수술 후 주기적으로 엄습해 오는 전신의 통증을 견디며, 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명의 시한(時限)을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연민의 안타까움으로 가슴 저민다. 그는 아내의 아픔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녀 곁을 떠날 줄 모른다. 이같은 온 가족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남편을 위해 목욕물을 받고 의상을 고른다. 그리고 딸아이에게는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집안을 치우게도 한다. 자신이 없었을 때를 염려한 준비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녀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삶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잘 먹지 않던 약을 챙겨 먹는다. 남편과 산책에 나서기도 했다. 강가에 앉아 노래하는 그녀와 남편은 ‘그 순간’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공포에 가까운 통증도, 얼마 후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놓고 떠나야 한다는 절박함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오직 살아 있는 ‘이 순간’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녀의 소중한 시간들은 이같은 작은 행복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녀에겐 죽음의 순간까지도 온 가족의 사랑 안에서 행복한 ‘오늘’로 기억될 것이다. 가까웠던 사람들의 가슴에 퇴색되지 않을 느낌으로 남을 그녀의 생은 언제나 행복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지금 여기’ 현재 자신이 갖추고 있는 조건 안에서 스스로 만족하며, 또 행복의 요소를 찾아 느끼며 사는 일에 서투르다. 남편이 명예나 지위가 높아졌으면, 아내가 검소하고 지혜로워졌으면, 아이가 좀더 공부를 잘했으면, 또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에… 미래의 허황한 기대 안에 크고 작은 행복을 가두어 놓는다. 그래서 서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짜증이 나고 공부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 잔소리를 하게 된다. 서로의 장점을 북돋아주기는커녕 가깝다는 이유로 단점만을 지적한다. 나 자신에게, 또는 상대에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상의 것을 바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들로 서로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갈등하고 원망한다. 세상을 떠돌다 지치면 돌아가 쉴 곳, 언제나 조건 없는 사랑으로 받아주었던 우리의 어머니들이 그립다. 지금 우리들에게 아쉬운 것은 자신은 물론 상대를 현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뢰와 사랑이다. 진실하고 큰사랑은 서로의 아픔까지도 포용하는 열린 마음 안에 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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