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말(言)의 힘
<지홍스님·조계사 주지>

2000.11.25 00:00:00

말(言)은 생각을 담고 존재를 규정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며 산다. 그러므로 평소 맑고 고운 마음 가꾸기에 애써야한다.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부드러운 말 한마디에 의한 아름다운 관계지음을 위하여. 여유 있고 유머감각을 지닌 사람과 마주할 때면 적절히 우려낸 차(茶)에서처럼 맑고 은은한 향기가 난다. 절제된 욕망과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다. 마치 꽃길에서처럼 선뜻 부는 바람에도 향기가 일듯이 그러한 사람들에게서는 꽃향기가 인다. 만나는 사람에게서 마다 말의 꽃피움에서 묻어나는 그 사람만의 성품(性品)의 향기를 발견한다. 요즈음 우리들은 TV를 비롯한 수많은 정보 매체들이 쏟아놓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가슴 한구석에 쓸쓸한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고 마는 그 수다스러움에서 말의 진실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말은 언젠가부터 그 진실의 무게를 벗어버리고 그저 가벼운 재잘거림에, 일시적인 욕구 해소에 값하고 있는 듯하다. 오랜 참구(參究) 끝에 깨달음 그 환희의 기쁨. 끝내 어두움 속에 묻혀버릴 것만 같았던 침묵을 깨고 그 차오르는 감격은 자연스럽게 오도송(悟道頌)이라는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거기에는 진리로 충만한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 일상의 말 또한 진지한 삶을 통해 걸러질 때 비로소 그 깊이와 무게를 지니게 됨은 물론이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일이 뼈에 사무치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 자체에 있지 않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진실한 마음과 행위가 담길 때 그 말은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말은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닌, 진정 살아있는 말이 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성현들의 참말을 만남으로써 우리들의 생은 새로워지곤 한다. 이는 해묵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말 자체의 힘 때문이다. 부처님이 설하신 팔만사천 법문이 이천육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위신력(威神力)을 갖는 것 또한 이와 같다. 부처님 마음이 담긴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하고 오체투지하는 것은 진실한 말이 갖는 힘에 의해서이다. 향기로운 말은 좋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 생각은 우리 마음을 그러한 곳으로 이끈다. 眞理가 우리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하듯이. ‘말이 씨 된다"는 속담이 있다. 말이 생각을 담기도 하지만 말 자체에 생각과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나는 할 수 있다"고 하는 긍정적인 확신이 가득한 말은 현실적으로 무엇이든 실현 가능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입시를 앞 둔 수험생 책상 앞에 이같은 글귀가 씌어있는 것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마다 긍정적이고 힘있는 말로 나 자신을,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곤 한다. 아는 이의 아주 어렸을 적 일이었다 한다. 갑작스럽게 집에 불이 나, 그의 가족은 기거할 곳조차 잃어버리고 남의 집에 머물러야 하는 비참한 신세에 놓이게 되었다. 그 날, 학교를 다녀온 그는 아연하여 어머니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 때,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엄마가 있잖니” 겁에 질렸던 그는 그 말을 듣고는 정말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한다. 가끔 세상 살기가 버거워질 때면 아직도 어머니의 그 말씀이 떠오른다고 그는 회상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한 상실감에 몸살을 앓고 있다. 모두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안간힘이다. ‘말은 양날의 칼과 같다"는 가르침이 있다. 사소하고 무심하게 던진 말 한마디가 그대로 상대의 가슴에 깊은 상처가 되어 꽂히고, 또 스스로의 심성도 다치게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고 비난하는 말로 이 어려운 시기를 더욱 힘들게 할 필요는 없다. 진정 필요한 것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서로에게 있어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의 말이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긍정적인 말에 힘을 모아 이 난국을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좌절과 실패를 암시하는 말로 앞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 필요는 없다. ‘말은 씨가 된다" 하므로.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