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큰 사랑을 합시다
<지홍스님·조계사 주지>

2000.12.16 00:00:00

전쟁에 참여했던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저는 무사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친구와 같이 있어요. 그 친구는 외눈, 외팔, 외다리입니다. 친구가 갈 곳이 없어요. 함께 집으로 가겠습니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래, 도와야지, 잠시동안 머물게 하여라.” 아들은 다시 말했다. “아닙니다. 잠시가 아니라 영원히 함께 있고 싶습니다.” “아들아 그건 안 된다. 그는 너에게 짐이 될 뿐이야.”라고 어머니가 대답한 순간 전화는 끊겼다. 그리고 며칠 후 자살한 아들의 시체가 도착했다. 외눈, 외팔, 외다리인 채로....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사랑은 나와 내 가족의 범위를 넘기 힘들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조금만 넓혀 보면 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생각을 바꿔서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대할 때 내 가족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때도 외면할 수 있을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한 솥 단지 가득 묵을 쑤라고 하였다. 묵이 눌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저어야 하는데 묵이 다 되기까지는 거의 하루 종일 걸렸다. 며느리는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나를 골탕을 먹이려 작정을 했나. 왠 묵을 이렇게 많이 쑤라는 것인가.’ 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유난히 묵을 좋아하시던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얼마나 묵이 잡숫고 싶으셨으면 이렇게 많이 쑤겠나.’하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러자 시어머니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가족 간에 가장 흔한 갈등이 바로 고부간의 갈등인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면 모든 면에서 많이 달라질 것이다. 아들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며느리에게 잘 해 주어야 한다. 남편을 사랑한다면 남편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시어머니께 감사하고 효도해야 한다. 고부간에 갈등이 생기면 누가 가장 힘든가. 아들이다. 남편에게 사랑 받고 싶으면 시부모님께 잘해야 한다. 자기 부모에게 잘하면 미운 정도 고와진다고 한다. 지금 남편에 대한 고운 정만 믿고 시부모님 홀대하면 결국은 남편과도 원만해 질 수 없다. 또 자기 아들 귀한 생각만 하고 며느리를 못 마땅해 하면 결국 아들을 불편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편협하게 자기 입장만 고집하다가는 가정에 화합이 깨진다. 사람이 모여있는 집단 내에서 화합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화합은 전체를 보는 입장에서 시작된다. 화합은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부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 의지하고 연관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울타리를 정해 놓고 이 것은 내 것, 저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 하고 선을 긋고 산다. 그리고 그 테두리 밖의 일에 대해서는 관심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여수 앞 바다에 유조선이 침몰한 것과 내가 무슨 상관인가 할 지 모르지만 거기서 오염된 해산물이 오늘 내가 먹은 아침 반찬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불이 나서 공기가 오염되면 우리나라의 공기도 영향을 받는다. 봄철의 황사현상도 중국에서 일어난 먼지 바람 때문이다. 농산물 값이 폭락하고 농민들은 빚더미에 앉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보다 좋은 상품과 많은 생산을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먹는다. 정부의 부패와 재벌의 경영부실로 우리는 국제구제금융시대를 맞이하였다. 대량실업과 사회혼란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건강을 위해 환경오염을 막아야 하고 건전한 농업정책이 마련되도록 힘써야 한다. 부정부패 척결과 재벌에 대한 감시와 같은 사회참여운동을 해야 한다. 그런 일은 정치인이나 몇 몇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일들이 알게 모르게 나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와 내 가족에 묶여서 울타리 안의 행복만을 추구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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