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그리운 짐승의 소리
<신순근 신부·꽃동네 회장>

2001.03.17 00:00:00

깊지도 않은 밤, 가까운 산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소리. 그것이 맹수의 울음소리가 아닐진대 거의 모든 이에게 반가웁고 정겹게 들리기까지 할 것이다. 얼마전 필자는 숙소가 있는 심신 장애자 요양원 뒤 일명 소 속리산이라 부르는 산자락을 밤중에 오른 일이 있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가톨릭에서 하는 기도 중 하나인 묵주의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지난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탓에 설국처럼 보여지던 때였다. 어디선가 동물의 왕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육장에서 가끔 들음직한 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짐승들의 소리를 자주 접해본 일이 없기에 막연하게 저것이 사슴이나 노루겠거니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반가운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산이 참으로 많은 나라다. 몇 년전 충남 칠갑산을 오른 일이 있었다. 정상에서 잠시 주위를 둘러 보며 땀을 식히고 있었는데 왁자지껄하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온다. 육십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분들인데 모두 정년퇴임을 하고 모인 친목단체인 듯 보였다. 잠시 이곳 저곳에서 쉬는 듯 하더니 한분이 주위를 돌아보면서 내뱉듯이 한마디 던진다. “어휴, 산도 오라지게 많구먼!” 어느 산이건 올라가서 동서남북을 둘러 보아도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물결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다. 그러나 그렇게 산이 많아도 짐승들이 살 환경이 못되는 곳이 거의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잘라놓고 파헤치고 길을 내놓아서 짐승들의 이동경로를 요리조리 차단시켜 놓았으니 큰 짐승들이 살 턱이 없다. 게다가 몸에 좋다고 하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닥치는 대로 마구 먹어대는 판에 산짐승들이라고 재대로 살아 남을리 없다. 체질과 성격과 생활습관이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 좋다고 하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하루 아침에 몽땅 한 쪽으로만 쏠려버리는 우리네의 모습이 아닌가? 그렇다고 무조건 그대로 두자는 말은 아니다 . 이젠 한번 더 생각하고 길을 내고, 한번 더 생각하고 파헤치고, 나무 하나라도 한번 더 생각하고 자르자는 말이다. 아주 오랜 친구와 경칩 전에 만나 점심을 같이 하며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필자와 점심약속을 하지 않았으면 어디 좋은 곳에 다녀 올려고 했단다. 그곳이 어디냐고 했더니 ‘경칩’을 잡으러 갈려 했다나. 진천 어느 산골짜기에 가서 흰 눈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개울의 돌을 뒤집어 보니 누런 놈들이 있어 몇마리 잡아 왔노라고. 눈이 너무 쌓여 더 들어가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친구 몇사람과 다시 한번 가려고 했다기에 “이 양반아, 당신만이라도 자연보호를 좀 하게나”하면서 술잔을 채워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유명산 입구마다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음식점마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경칩있어요”하는 호객소리가 들리겠구나. 또다시 짐승의 소리가 들린다. 정확히 그 소리가 저희들끼리 부르는 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어디에 걸려서 고통스러워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디 걸려서 고통스러워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고 주고 받는 신호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들이 그렇게 마구 행패를 부려도 살아주는 그들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제발 너는 밀렵군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지 말거라. ‘아뿔사, 내가 지금 무슨 상념에 빠져 있는고!’ 묵주알을 되집어 본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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