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새롭고 소중한 패러다임
<신순근 신부·꽃동네 회장>

2001.03.24 00:00:00

현 시대는 아직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이는 도올 김용옥 교수의 말을 빌릴 것까지 없이 모든 이들이 느끼고 공감하는 현상이다. 적어도 한국사회는 그렇다. 전에는 특정 종교에서 출발한 사상이나 정치철학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였지만 오늘에 와서는 그 어느 것도 이 사회를 이끌어 가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사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기에 무엇하나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돌아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필자는 천주교 신부이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 현상을 보면 무종교 무신론에 가까운 모습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죽음의 문화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느 특정 종교에 깊이 심취해 있는 분들은 펄쩍 뛸지도 모른다. 우리 교 신자가 얼만데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그러나 각 종교에서 발표한 신자 수를 다 합하면 우리나라 총 인구보다 더 많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고 여기서 논할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한국이라는 세상을 보자. 가나다순으로 해서 개신교의 예를 보자. 금주, 금연운동은 참 바람직하고 존중되어야 할 일이지만 세상은 그렇지를 않다. 일년에 한국에서 소비되는 술의 양이나 담배 소비량의 발표를 보면 큰 소리 칠일이 아니다. 교회 문밖만 나서면 거의 먹혀들지 않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불교에서 살생은 가려서 하고 그 상징으로 방생대회를 해도 세상은 그렇지를 않다. 거의 묵살되고 있는 것 같다. 천주교에서 인간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에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부르짖으며 유산 낙태를 반대해도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다. 타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분은 오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종교 혼합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류는 날로 더욱 긴밀히 결합되고 여러 민족들 사이의 유대가 더욱 강화되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인간과 인간, 민족과 민족 사이의 일치다. 사랑을 도모해야 할 사명감을 느끼게 하고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 즉 모든 사람을 공동 목적으로 이끌어 주는 것들을 진지하게 보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리스도 교에서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성인 중에 프란치스코(1181∼1226)라는 분이 있다. 그의 전기를 보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한쪽 발로 간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벌레를 밟을까봐 그렇게 한 것이다. 중국이나 한국의 어느 고승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프란치스코는 땅에 기어가는 벌레를 보면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생명이 너무나 놀랍고 아름다워서, 죽이기는 고사하고 함부로 밟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무종교 현상, 정확한 수치는 아니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약 1/4을 제외하고는 어느 종교에든 관련되어 있는 분들 일게다. 그런데 무종교라니, 이는 미미한 것 같지만 항상 새롭고 소중한 패러다임이 그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는 말이다. 타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을 그대로 볼 줄 아는 마음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중하는 자세일 것이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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