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교육은 전투가 아니다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2001.04.14 00:00:00

“이제 사는 것도 질리고 지쳤다." 모진 풍상을 겪은 노인의 넋두리처럼 들리는 이 말은, 얼마 전에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한 초등학생이 남긴 유서의 내용이다. 따라가지 못하는 학업에 대한 압박과 부모의 성화에 떠밀린 한 어린아이가 세상에 남긴 단발마이다. 최근에 자살사이트 문제가 장안의 화제였다. 어떤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소년의 89%가 자살사이트에 접속한 사실이 있고, 대상자의 59%가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이 중에는 초등학생과 같은 아동이 13%나 포함되어 있다. 자살충동을 느끼는 주된 이유는 ‘학업성적이나 장래문제 때문"(33%)으로 단연 톱이었다. 청소년의 1/3이 성적 때문에 경쟁 속에서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자살충동을 느끼며 산다니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대체 교육이란 게 뭔지…. 언제부터인가 교육은 군사들을 위한 훈련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이른 아침 버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그것도 모자라 양손에 손가방을 들고 등교 길을 재촉하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어떤 살기까지 느껴진다. 남을 제치기 위해 공부시키고, 남을 누르기 위해 건반을 두드리게 하고, 살아남기 위해 공을 차게 하는 세상이 참 무섭다. 옛날 학창시절의 정겨운 모습은 이제 정말 고향집 굴뚝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사라지던 향수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오래 전에 개봉되었던 영화 <샤인>이 생각난다. 실존인물인 현역 피아니스트 헬프갓의 정신분열과 극적 회생을 담고있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다. 정신분열의 직접적 원인은 아버지의 전투적인 교육방식 때문이었다. 아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구하려는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스파르타식으로 아들에게 피아노 교육을 시킨다. 피아노 이외의 다른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과 그의 천재성 덕분에 그는 10살 때 이미 각종 콩쿠르에서 우승을 휩쓸고 세계적 음악가들로부터 미국 줄리아드음악대학 유학을 권유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줄리아드의 교육방식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극렬하게 반대한다. 아버지는 헬프갓이 유학을 가면 부자간의 관계를 끊겠다며 어린 헬프갓을 협박하고, 구타하며 집에 감금하기에 이른다. 결국 줄리아드 유학의 기회는 좌절되고 헬프갓은 가까운 영국 런던왕립음악원으로 도망치듯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상당한 경지에 오른다. 하지만 유학 도중 가진 연주회에서 긴 머리를 피아노에 쑤셔 박고 광기에 사로잡혀 라흐마니노프를 완벽하게 연주한 그는 기립박수를 받으며 쓰러진다. 그날 이후 나타난 극심한 신경쇠약 증세가 정신병으로 발전하고 결국 천재의 이름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점차 잊혀진다. 아버지의 전투적 사랑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그는 이름 없는 한 카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바닥생활을 이어간다. 그때 구원처럼 나타난 여인 길리언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10년만에 재기 콘서트를 가지며 정상인으로 돌아온다. “음악은 전투가 아니다.”영화 말미에 그가 뱉어내는 깨우침의 말이다. 이제 8살 된 아들놈이 두 달째 학교란 전쟁터에서 신병교육을 받느라 몸살을 하고 있다. 오늘도 아내는 능숙한 조교처럼 기상과 세면시간을 체크하고 최소한의 칼로리로 조식을 챙겨준 후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해야 돼!"하며 등을 떠민다. 재촉에 밀려 선잠을 눈가에 달고 집을 나서는 아들의 등에 매달린 가방이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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