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원장의
우표로 본 치의학 (8)

  • 등록 2003.03.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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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2. 중세의 치의학 - 신은 죽었다. 그러나 치통은 남았다 - 르네상스유럽에서는 그동안 종교가 지배했던 시기로 큰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였지만 십자군원정으로 사라센의학의 유입과 12세기초부터 설립된 대학에서의 연구는 르네쌍스로 넘어오면서 인간과 자연의 이치를 규명하고자하는 노력과 함께 사실과 진리에로의 접근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즉 중세의학은 르네쌍스에서 부터 시작되는데 르네상스의 대표적 인물은 ‘모나리자’의 작가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다. 그는 인체의 여러 부위의 구조와 비례를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서 교회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에 묘지에서 시체를 파 내어 촛불로 비추어 가면서 해부했으며 노트에 남아 있는 골격에 관한 연구에는 종교적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을 새롭게 발견하고, 세계의 중심에 놓으려는 집념이 인체해부도에 깃들어있다.이 르네쌍스시기의 의학자들은 인체와 그 기능에 대해 활발한 연구가 있었으며 그들 중에는 암브로와스 파레,월리엄 하비와 파라켈수스,바셀리우스 등이 있으며 이들은 인체의 구조와 생리에 대해 연구를 하였다. 근대 외과학의 창립자로 알려진 파레는 전쟁을 통하여 습득하고 숙달된 외상치료와 치아재식과 이식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구강외과영역에서 파레는 탈구된 치아는 정복후 주위의 치아와 결찰케 하였다.월리엄 하비(Willam Harvey/1578∼1637)는 1602년경 혈액의 순환 원리를 규명하였다. 파라켈수스(Paraceisus 1493∼1541)는 전래되어온 의학지식을 거부하고 연금술적인 화학적 방법의 치료를 시도하였으며 그 동안 전래되어온 연금술을 이용하여 금속을 수은에 녹이는 아말감 제조법(amalgamization)을 개발하였으며 이를 치료에 이용하고자 했다.바셀리우스(Vesallius/1514∼1564)는 ‘인체구조에 관한 7권의 책’에서 치아의 형태와 명칭 치근의 수와 길이 등에 대해 정확한 설명하였으며 현대 치아해부학과도 대동소이하다. 치수강의 존재를 발견하고 기술하였으며 이는 치아에 영양을 공급한다고 설명하였다.중세 병원의 모습을 표지에 도안하여 사용된 봉함엽서 종류로 내면에 여러 광고가 인쇄되어 있다 이 봉합엽서 내면에 ‘Teeth’라 쓰인곳에 치아결손 치료에 대한 광고가 삽입되어 있다.(화살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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