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만나는 철학이야기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들과 주체의 문제(하)
철학아카데미 이정우 원장

  • 등록 2003.06.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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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튀세 : 맑시즘, 구조주의, 인식론 <完> 그럼에도 두 기구들은 상보적이다. 억압기구는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을 동반하며, 이데올로기 기구들은 억압기구를 동반한다. 폭력과 이데올로기는 항상 함께 작동한다. 무게중심이 다를 뿐이다. 한편으로 다양한 이데올로기 기구들은 결국 지배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직간접적으로 복속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어떤 계급도 이데올로기 기구들 위에서, 그리고 그것들에 헤게모니를 행사함으로써 국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레닌의 예) 계급투쟁은 이데올로기 기구들보다 상위의 개념이다. 계급투쟁은 하부구조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2) 이데올로기 기구들의 중요성은 그것들이 ‘생산 조건들의 재생산"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 조건들의 재생산은 생산력의 재생산과 생산관계의 재생산을 포함한다. 생산력의 재생산은 다시 노동력의 재생산과 생산수단들(원료, 고정설비, 생산도구 등)의 재생산을 포함한다. 이 문제를 상세하게 파헤친 것이 맑스의 공헌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알튀세는 노동력의 재생산이 더 이상 공장에서의 문제만은 아니며 다른 국가기구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학교는 대표적이다. 즉 노동력의 재생산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야만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여기에서 고전적인 경제적 분석들을 넘어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이 제시된다. 이 분석은 곧 생산관계의 재생산에서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의 역할에 관한 분석이다. 알튀세는 (서구)전통 사회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 기구가 가족 기구와 교회 기구였다면,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기구는 가족 기구와 교육 기구라고 생각한다. 정치 기구가 계속 바뀌어도 오히려 이 기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교육 기구는 ‘노하우들"(언어, 산수, …)과 지배 이데올로기(도덕, 국민윤리, …)의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역할들"을 가르친다. 피착취자의 역할, 착취의 대리자 역할, 억압의 대리자 역할, 이데올로기 전문가 역할 등등. 3) 이데올로기는 결국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로서 호명(呼名)한다. 주체는 각 개인들에 의해 ‘자명한" 것으로 인지되는데 이 자명함이야말로 다름 아닌 이데올로기의 효과이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인지하지만 과학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한다. 이데올로기적 인지는 결국 ‘오인"에 불과하다. 대주체, 국가기구들은 사람들을 소주체로 부른다. 이것을 라캉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함"과 비교할 수 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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