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닦기의 시초는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중국 송시대 승려들이 막대기 모양의 나무를 이쑤시개처럼 만들어 이를 닦았다고 한다. 또한 인도의 석가모니도 심신을 씻고 개끗하게 하는 것이 불법의 기본이라고 설파하며 칸타카시타(이쑤시개)를 사용해서 아침 일찍 입을 헹구며 이쑤시개로 이를 닦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모든 중생이 맑고 깨끗한 불도를 향해 참회하고 번민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하려고 참선의 소리를 반복하면서 이쑤시개를 사용하여 이를 닦고 헹구어 청정케 하는 행위가 이뤄졌다. (道元의 正法眼藏)
이닦기는 이와같이 종교적인 의식에서부터 시작된 행위였다. 입안을 깨끗이 하는 것이 곧 심신의 평정과 평안함을 얻어 온전한 부처상태에 몰입 할 수 있다는 종교사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그 의미를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것도 같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다는 상태는 의학적으로도 신체의 자율신경계나 면역계의 생리에 영향을 주고 있음이 확실하고 보면 이닦기는 그 당시에 매우 과학적인 의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된다.
요즈음 치과의사나 일반 사람들은 이닦기를 단순히 충치나 잇몸병 예방의 목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이닦기의 의미를 단순히 질병예방의 목적으로만 한정지어 버려도 될 것인가? 구강내에 단순한 세균학적 현상이나 병리학적 현상의 시각에서 이닦기를 프라그(세균)만 제거하면 치료나 예방이 되며 그것이 곧 구강건강으로 이어진다는 단편적인 발상으로 환자를 돌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사람의 생활리듬이나 정서에 따라 변화 될 수 있는 구강의 특수 적응력에 대한 고려없이 단순히 국소적인 병리현상에만 집착한 프라그 제거나 이닦기의 강요는 바람직하지 않은 예방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이란 원인만 제거하면 얻어지는 단순한 원리가 아니다.
충치예방을 위해서 초콜릿이나 달콤한 과자, 사탕의 섭취를 줄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 지나치게 신경질적으로 음식을 금지시키는 것도 어린이 정서에 좋지 않다. 아이들에게 달콤한 초콜릿이나 과자는 하나의 꿈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꿈을 깨뜨리는 일을 과연 우리가 꼭 해야 하나? 아이들은 단순히 입으로만 과자를 맛보고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과자의 맛을 즐기는 일은 오히려 타액분비를 촉진시키고, 단맛의 즐거움은 스트레스, 긴장을 해소 시켜주어 오히려 충치 예방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치주병의 예방은 이닦기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게 지엽적인 치주병의 해석에서부터 비롯되어진 것이다.
치주병은 만성질환의 전형적인 모형의 병이다. 우리몸에 일어나는 노화 호르몬 분비의 변화, 면역기능의 감퇴, 수면 부족, 정신적 스트레스, 생리적인 과로등 일상 생활양식의 여러가지 몸의 변화가 치주병에 더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순한 치태(세균)에 의한 염증만을 제거하는 행위만으로 치주병이 해결 될 수 없다는데 묘미가 있음이다.
우리들이 지도하고 있는 이닦기 행위는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한 평균치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나온 하나의 설(設)일 뿐이다. 이를 닦는 이유와 어떤 방법으로 이를 닦는가 하는 일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환자들이 처해 있는 각양각색의 다른 상황을 명확히 인식해 그 환자(사람)의 현실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방법으로 이닦기를 지도해야 한다.
이닦기의 진정한 의미는 환자 자신의 잇몸이 붓거나 피가 나는 잇몸병 증상을 자기자신의 이닦기 행위로 치유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방법으로 환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고무시켜주는 일이며 또한 자기자신의 이닦기 행위를 통해서 일상의 생활에 안정과 평안을 유지하며 성숙된 삶의 방법을 스스로가 찾는 노력의 일환으로 여기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동물들은 이닦기를 하지 않는데 오직 인간만이 이닦기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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