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고 한다. 봄이 가고 나면 여름이 오고.
겨울은 한 철 나기가 다른 계절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겨울이 한 가운데로 접어들면 빨리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게 된다. 그럼에도 조바심하지 않는 것은 곧 봄이 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또 시절이 어김없이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거짓말 같이 영원할 것 같던 추위가 어느 덧 꽁꽁 언 마음을 풀어 산하 대지에 봄기운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봄은 오는 것이 아니고 겨울이 가는 것도 아니다. 시절 조건이 달라지니 현상도 다르게 화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한 것을 자기 것이라 고집하면서 불편하거나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거부한다.
한 여신도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프기 전 까지는 누구보다 많은 조건을 갖춘 삶을 살았던 그녀는 사찰을 찾아다니며 교리공부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불행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라 여기며 살아온 그녀는 몇 년 전 늘 양지에만 머물 줄 알았던 남편 회사가 부도를 맞는데 이어서 자신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파킨슨병이 찾아들었다. 온갖 치료 방법을 찾아 헤매고 다녔지만 하루에도 여러 차례 죽음의 공포를 맛보아야 했다. 결국 이론이 아닌 실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선원을 찾은 그녀는 ‘자신의 근본인 ‘참 자기’만이 자기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그 자리에 진실로 맡기고 가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 그 때부터 오직 자신을 형성시켜 이끌어온 영원한 내면의 자기 뿌리를 붙들고 들어갔다고 한다. ‘아프게 하는 것도 그 자리이니까 아프지 않게 하는 것도 그 자리에서만이 할 수 있다’고 진실로 믿고서.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부처님의 고행을 생각했고, 또 때로는 자기 육신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참 자기에게 화를 내기도 하면서.
그렇게 치열하게 참 자기를 붙들고 구원을 요청하던 그녀는 어느 때부터는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맡겨지는 마음이 됐다고 한다. 그런 어느 날 병이라고 이름 지어진 수십 억 조에 달하는 몸 속 세포들이 두려움과 고통에 떨고 있는 모습 아닌 모습을 보았다.
아파한 것은 자기가 아니라 수 없는 생을 거쳐오면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여기까지 온 바로 자기 몸 속의 의식세포였음을 알고는 너무나 가여워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고 한다. 내 몸 속에 침투해 나를 병들게 했다고 여겼던 병이란, 바로 조건이 바뀐 자신이었음을 알게되면서 그녀는 그 후 몸 속 세포들이 아파하면 함께 아파했고, 함께 울며 마음으로 끌어안아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가다 보니 사형선고 기일이 여러 해가 지난 오늘날까지 살아있을 뿐 아니라 정상으로 회복되고 있음에, 병과 더불어 감사한다고 했다.
세상의 이치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배척하면 그 순간 자신부터 꽉 막히고 만다. 안에서 나오는 것이든 밖에서 오는 것이든 일체 현상이 나와 둘이 아님을 알고 좋다 싫다, 내 것이다 아니다, 간택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그렇게 하나가 돼줄 줄 안다면 어떻게 내가 나를 해칠 것인가? 꽃이 만발한 새봄의 산도, 추운 겨울의 눈 덮인 산도 모두 다 그 산인 것이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이 시절, 둘 아닌 마음으로 다시 한 철을 맞이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