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내 어리석음을 지켜보니

  • 등록 2004.03.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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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어리석다 보면 하는 일마다 어리석게 된다. 남이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을 볼때는 앞뒤가 훤히 보이고 훈수도 기가 막히게 잘 해 주는데, 정작 자신의 경우가 되면 그만 등잔 밑이 깜깜하게 돼버린다. 어느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부처님께서 상인으로 지내시던 전생 어느 날, 목수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가다 다음과 같은 광경을 보셨다. 한 늙은 목수가 나무를 베고 있는데, 모기 한 마리가 목수의 뒷머리에 앉아 칼로 베는 듯 침을 찔러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목수는 그 곁에 앉아 있던 아들을 불렀다. “얘야, 모기가 무는구나. 모기를 좀 쫓아다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님, 기다리십시오. 제가 모기를 잡겠습니다.” 아들은 모기를 잡겠다고 큰 도끼를 들고 와서 아버지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쳤고,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상인(부처님 전생)이 이 광경을 보고 말했다.“비록 적이라도 현명한 것이 낫다. 그는 형벌이 두려워 사람을 죽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동지라도 지혜가 없으면 지혜로운 적보다 못하다. 이 미련한 바보 아들은 모기를 잡으려다 아버지를 죽이는구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둘 다 어리석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행을 좀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긴 하지만, 이 어처구니 없는 어리석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기 잡고 빈대 잡는 데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앞뒤가 꽉 막혀버린 어리석음 때문이 아닐까?
집착은 사람을 어리석고 여유 없게 만든다. 어떤 것이든 집착하면 집착하는 그 것만 보이고,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객관적 지혜의 눈이 어리석어진다. 밝은 지혜의 눈을 어둡게 만드는 걸 무명(無明)이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얄미운 빈대나 모기 잡는 것만 생각했지, 아버지 머리통이 깨지고 초가삼간 날아갈 것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몇몇 안되는 바보 천치들이나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할 것 같지만, 집착으로 인한 어리석음 때문에, 자신을 또는 가족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일이 오히려 해치게 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엔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어딘가를 가려고 잘 차려입고 길 가에 서 있는데, 차 한 대가 쌩 지나가면서 느닷없이 구정물을 내게 뒤집어 씌운다면, 그때 기분이 어떨까?
경계에 처하자마자 어떤 반응이 제일 먼저 나타날까? 보통 사람이라면, 먼저 이미 지나가 버린 차를 향해 한마디 해댈 것이다. 그리곤 엉망이 돼버린 옷을 보며 화가 나고 속상하고 걱정이 되고…. 한마디로, 겉 뿐만 아니라 속까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갈 길을 가느라 무심히 지나가는 차는 단지 내 옷을 망쳤을 뿐인데, 나는 원망하고 욕하고 화내며 그 보이지 않는 구정물로 인해 내 마음까지 왕창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모기는 민생고 해결하느라 아버지를 좀 귀찮게 하며 기껏해야 피 몇 방울 빨아 먹었을 뿐인데, 어리석은 아들은 아버지를 아예 박살 내버렸듯이 말이다.


갈아 입으면 그만일 옷에 집착해 가장 소중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더럽히고 괴롭힌다면, 모기에 집착해 아버지를 죽인 아들이나 빈대에 집착해 초가삼간 태운 자와 다를 바가 어디 있는가?.
자신을 끔찍히도 아끼는 사람이 어찌 천지 분간을 못해 자신을 이렇게도 해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자기가 지금 자신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자기 마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한, 그걸 고칠 수 없으니, 그래서 항상 마음을 잘 지켜봄으로써 스스로를 다스려가는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구정물 세례를 받는 순간, 지나가버린 차가 아니라 버려진 옷이 아니라 쏜살같이 내 마음을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 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 욕하며 탓하고 있나. 길길이 화를 내고 있나. 속상해 어쩔 줄 모르고 있나. 아니면 그런대로 담담한가. 묵묵히 지켜 보노라면, 여유가 좀 생기고 앞뒤가 제대로 보인다.


‘아하, 날 화나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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