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치의학의 교육-치과의사 - 모든사람에게 웃음을
고대문명의 유적을 보면 치과치료를 담당하는 특별한 신관이 있었던 곳도 있었으나 원시적인 진료가 대부분이었으며 특별한 계층의 사람 이외에는 치과치료는 전무한 상태이어서 그 발달은 미미했다.
그 후 중세를 지나면서 여러 직업으로 분업화가 이뤄지게 되지만 치과에 관련된 의술은 일반의학과 같이 취급됐고 18세기에 이르러 치과만 독립돼 가르치고 배우는 도제형식의 교육이 시작됐다.
18세기말 영국의 ‘토마스 발트모어’에 의해 공식적으로 치의학에 대한 개인교습과 강의가 시작된 이래 19세기에 이르러 미국을 중심으로 크게 발달한 치과의학은 전문적인 치과의사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했으며 ‘Baltimore Collage of Dental Surgery’라는 세계최초의 치과의학 교육기관이 호레이스 H.하이덴(1769-1844)이라는 치과의사에 의해 창설됐고 1840년에는 메릴랜드 주 의회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아 치과의사를 양성하기 시작했고 이는 현재 메릴랜드치과대학의 전신이다.
이 학교의 최초 졸업생은 2명이었으며 이들에게는 처음부터 D.D.S.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한다. 그후 1867년 하버드대학교에 부속 치과부를 설치됐으며 우리나라는 나기라 다스미박사에 의해 사립 경성칫과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가 설립된 것이 1922년 4월이고 1925년 4월에는 28명의 치과의사를 배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치과의원은 일본의 치과의사 노다 오오지가 인천에 노다치과의원(野田齒科醫院)을 개설한 때인 고종30년(1893년)이고 주로 발치를 위주로 했기에 외과의 한 분과로 인식됐으며 한일합방을 전후한 시기부터는 입치사라 불리는 정식 인가되지 않는 사람들이 경성을 중심으로 잇방(牙房 이 해박는 집)을 개설해 치아보철 시술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