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욱 변호사 법률 이야기 28]의료과실과 신뢰의 원칙

  • 등록 2004.12.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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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원칙은 과실범에서 주의의무규칙을 준수하는 사람은 다른 참여자들도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신뢰해도 괜찮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즉 그렇게 신뢰하고 한 행위결과로 구성요건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과실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참여자에 대한 신뢰가 행위자의 객관적 주의의무를 제한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대법원 1977. 3. 8. 선고 77도409 판결에 의하면 “교통정리가 행해지고 있지 않은 교차로의 넓은 도로로부터 진입하는, 통행의 우선순위를 가진 차량의 운전자는 이와 교차하는 좁은 도로에서 진입하는 차량이 교통법규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하리라고 신뢰하고 운전할 것이므로 그와 같은 기대신뢰 하에 상당한 주의를 한 이상, 상대방 차량의 부주의로 야기되는 충돌사고로 그 차에 탄 사람이 상해를 입은 경우에도 업무상과실치상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이후에는 신뢰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크게 줄었다.


교통사고 외에도 의료행위 영역과 같이 기능적 분업이 일반화된 영역에서 신뢰의 원칙이 문제될 수 있다. 의료행위는 보통 인체의 복잡성 또는 다양성으로 인해 여러 과목으로 세분돼 있고, 업무의 내용도 분업화 돼서 의료인간 협동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의료행위의 분업성, 협동성에 기인해 신뢰의 원칙이 문제된다. 수술과 같은 의료행위에 있어서는 집도의사, 마취의사, 간호사 등의 업무분담이 불가피하고, 이들의 긴밀한 협력 없이 중대한 수술이 불가능하다. 신뢰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할 경우에도 일정한 제한이 있는 바, 의사 스스로 규칙을 위반한 경우, 상대방의 규칙위반을 인식한 경우, 상대방의 규칙준수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신뢰의 원칙을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대형 의료기관 일수록 간호사에게 더 많은 업무를 부담시키는 방향으로 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수직적 분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현실적 요청이 등장한다.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분업적 의료행위에서 의사, 치과의사는 환자의 진료전체에 대해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진료 가운데 의학적, 임상적으로 자신이 분담한 의료영역에 대해만 형사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요청이 등장한다. 이렇게 돼야만 의사와 같은 전문가의 업무영역에서도 형법의 기본원칙인 개별책임원칙이 고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직적 분업의 경우 신뢰의 원칙은 일정한 제한이 따른다. 즉, 진료의 구체적인 내용이 오직 의사에게 배타적으로 귀속되는 업무나 책임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간호사에게 그 업무를 위임할 수 없다는 원칙(위임금지의 원칙)이 있다. 특정한 업무가 간호사, 치과위생사에게 위임 가능한 지 여부는 의료법 등 관련법령의 해석이 주된 기준이 될 것이며 이외에도 보조인력의 종별, 숙련도 등이 문제될 수 있을 것이다.


치과의사는 간호사, 치과위생사에게 분담시킨 업무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는 간호사와의 수직적인 분업에서 등장할 수 있는 특별한 위험원을 관리할 의무를 진다. 이 의무에는 ①간호사가 분업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의 심사, ②분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인지, 간호사가 지시된 분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의 숙고, 간호사가 지시된 분업의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감독 등의 세부 의무가 있다. 현실적으로 이중 마지막 세부의무가 문제될 수 있는데, 치과의사는 간호사, 치과위생사가 지시받은 분업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언제나 물샐틈없이 감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치과의사의 간호사, 치과위생사에 대한 감독의무는 규칙적으로 이따금씩 심사를 하는 것만으로 이미 충족된다고 보아야 한다. 치과의사의 지시 또는 감독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신체에 대한 위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의료과실과 관련해 신뢰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다. 대법원 1994.12.22 선고 93도3030 에서는 “갑상선아전절제술 및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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