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강신익]가치를 추구하는 의술

  • 등록 2004.12.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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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대학에 다닐 때 어떤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분은 치과대학의 교육이 기술교육이고 직업교육이라는 지론을 갖고 계셨고 그 신념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수시켜 주셨다. 그 말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치과대학을 선택한 이상 우리들 대부분은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 교육 또한 그런 직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데 집중될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그 교수님의 말씀이 귀에 거슬렸던 것은, 직업은 단순한 생계의 수단이며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직업 밖에서 찾아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치과대학의 교육은 직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일 뿐 그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치과의사)이 추구해야 할 의미와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당시나 지금이나 치과의사 중에는 치과의료 속에서 가치를 찾지 않고 치과의사 외의 활동에 열심인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수단(직업)과 목적(인생의 의미와 가치)을 명확히 구분하는 교육문화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물론 치과의사의 대외활동은 우리 직업 전체를 위해서도 무척 의미 있는 일이며 적극 장려되어야 할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수단과 목적이 분열되어 우리 직업 본유의 가치가 손상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최근 국내외에 불고 있는 의학교육 개혁의 바람은 이러한 수단과 목적의 분열을 극복하여 가치를 추구하는 의료를 만들자는 의도를 품고 있다. 질병 발생의 메커니즘을 배우고 그 과정을 차단하는 기계적 수단을 제공하는데서 벗어나 질병을 앓고 있는 인간(환자)의 내면적ㆍ외면적 고통에 주목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이다. 그래서 많은 대학들이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전통적 벽을 허물고 환자가 실제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문제 상황에서 출발하는 문제기반학습(Problem-Based Learning)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치료 술식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확립된 질병의 메커니즘에 따르기보다는 그 술식이 실제로 환자의 고통을 해소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중시하는 방식(Evidence-Based Dentistry)으로 전환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초보적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흐름이 이제 갓 치과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개업의를 포함한 모든 기성 의료인에게도 기본적인 자세의 전환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지난 10여 년간 많은 치과의사들이 변화의 기류를 감지하고 나름대로의 변신을 시도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도 많지만, 그것이 의술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었는지에 대한 반성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치과의사가 마케팅과 경영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직업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환자의 신체적ㆍ정신적ㆍ사회적ㆍ영적(靈的) 고통을 해소한다는 의료의 본질에 얼마나 부합하는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훌륭한 시설과 기술을 갖추고 환자의 요구를 모든 업무의 중심에 두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일이겠으나 자칫 형식에 치우쳐 환자의 내면적 요구에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의사의 기본 역할을 다섯 가지로 간추려 五星醫(Five-Star Doctor)라는 이상적 의사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보살핌의 제공자(Care Provider)이며, 둘째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결정자(Decision Maker)다. 이러한 의사결정에는 관련당사자와의 깊이 있는 의사소통이 필요하므로 셋째 대화자(Communicator)로서의 역할이 부여되며 그런 대화는 개인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되므로 넷째 지역사회 지도자 (Community Leader)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의료기관을 합리적으로 운영해야 하므로 경영자(Manager)로서의 자질이 요구된다. 이 다섯 가지 역할 모두에 충실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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