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사람)를 치료한다.’는 말은 의학교육에서 언제나 강조되는 명제이다.
사람 밖에서 존재하는 질병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가 없다면 의사의 존재도 필요 없다. 현대의학에서 질병의 치료에는 과학적 메커니즘에 근거한 이론과 방법만이 최상의 수단이라 생각될 뿐 병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간으로 접근하면서 치료하기를 꺼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의학은 질병 자체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과학적 의학과, 환자 중심으로 치료의 본질을 강조해 온 예기(藝妓)의 두 관점이 항상 대립되는 차이점 또는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다. 이 두 관점 모두 자체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하고 있다. 과학적 의학 지식과 예기에 속하는 경험적 지식을 통합하여 질병치료에 합리적으로 적용시키는 문제가 현대의학의 과제이다.
현대의학은 과학적, 객관적 지식만을 유용한 정보로 사용하려 하며, 경험적 지식은 주관성에 좌우되는 변화무쌍하고 애매한 것이기 때문에 신뢰성을 얻기엔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의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은 배움을 통해 얻어지며 또한,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도 많다. 경험은 특히 임상의사에게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는 것이다. 경험은 지각(知覺 perception) 이며, 인지적(認知的 cognitive)활동에 속하기 때문이다. 지각으로 인한 정보가 많을수록 경험은 더욱 풍부하게 된다. 경험은 우리들에게 지식의 새로운 범주를 창출하여 지식을 보다 넓게 펼칠 수 있도록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과학적, 의학적이라는 것 자체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의학교과서에 있는 이론과 지식에는 경험적 감성에 대한 가치나 미학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는 편이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의사들은 환자에게서 정보를 수집하여 그 정보에 근거하여 진단과 치료를 결정하는 방법을 배우며 환자에게 닥친 그 밖의 문제를 다루는 방법은 교과서와 스승을 따라서 그 경험을 점차 조직화해 나가게 된다.
많은 경험을 통해서 상황에 대한 침착성도 얻게 되고 관대해 지기도 한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이 무엇이며,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도 알게 된다. 또 어떤 환자가 좋은 환자이며, 의사를 어렵게 하는 환자가 누구인가도 배우게 된다. 동료들과 어울리는 법, 병원 내에서 일어나는 의학 밖의 갈등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그래서 실천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배우면서 노련하고 숙성된 임상의사가 되어가는 것이다. 의사가 배움을 얻게 되는 경험은 주로 다른 사람을 통해 얻어지는 경험이다. 특히 환자의 경험을 경험해야 한다
즉, 환자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반응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 환자의 실상(實像 history)을 알 필요가 있다.
임상의사는 의학 지식 뿐 만 아니라 세상사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환자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이 곧 의사의 깊이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의학에서만은 경험의 주체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과학자로서의 의사보다 인간으로서의 의사만이 병든 사람이 경험한 모든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간으로서의 의사를 능가할 수 있는 어떤 과학적 지식도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임상의학에서 다루는 중요한 과제는 질병에서 문제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 원인을 밝혀내고 그 치료법을 결정하며 그 질병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다. 의사가 올바른 치료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임상 경험을 통해서 병든 사람과 그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는 더 많은 질문과 의문을 가져야 하며, 더 자세히 관찰해야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또한 환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만 풍부한 정보를 얻게 된다. 환자와의 인간관계를 잃으면 의학지식의 궁극적인 원천을 함께 잃게 되는 것이다. 의사에게 경험이 쌓일수록 점차 의사의 권력을 권위화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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