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를 따라 산행을 다녀왔다. 그날의 산행은 앞서가는 친구의 뒤만 올려다 보면서 산을 오르며 땀을 뻘뻘 흘린 사실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아내와 아이들에게 허풍스럽게 산에 대한 예찬론을 펴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했다. 산을 너무도 몰랐기 때문에 그런 용기 있는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게 아니었나 생각된다. 대학에 있었을때 강의하거나 환자치료를 할 때면 가끔 두렵고 겁이 나는 경험을 했었었다. 수없이 보아온 환자이고 많은 시간을 강의했는데도 그렇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진료나 강의 같은 것들이 한갓 앞선 친구의 뒷 모습만 올려다 본 산행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자책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의학교육은 분명히 전문기술교육을 우선적으로 해야겠지만 그 기술이 아무런 도덕성이나 정신적인 바탕없이 연마된다면 흡사 기능공을 양성하는 일 밖에는 안될 것이다. 훌륭한 의사를 만드는 일은 해박한 이론이나 수려한 테크닉 연마만으론 해결될 수 없음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의학도들에게 정신윤리·철학 강의만을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기술과 정신이 어우러진 진정한 의학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진정 병을 가진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을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대학에선 산을 오르는 방법, 산행에 필요한 장비나 도구들에 대한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남을 따라 산을 올라갔다 와도 등산은 등산이듯이 어름어름 대학을 나와도 의사는 된다. 그러나 그 산을 오르내리면서 느껴야하는, 산속에 숨어있는 깊은 신비와 숭고함에 대해서는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 내용은 의학교과서에는 없기 때문이다. 정신문화 보다 기술문화에 더 값을 쳐 주는 요즈음의 잘못된 경향 탓으로 의료문화에서도 기술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의사만들기’를 대학에서 강조한다면 의학교육은 그 길을 크게 잘못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에선 계속 산을 오르고 내리는 방법만이라도 끊임없이 가르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꾸 오르내리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산의 진수를 깨우칠 날이 있을 것 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의과대·치과대에 들어가 나중에 의사가 되는 것이 가장 인정받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으로 각광 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옛날 우리 사회가 다변화되지 않았을 때는 의사·변호사·은행가 등 소위 화이트 칼라 부류에 속하는 직업이 단연 돋보였지만 요즘은 어느 분야건 간에 뛰어난 재질만 있으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있다. 가령 노래 하나만 잘 불러도, 운동 한 종목만 특출하게 잘 해도 세상에서 높은 별(스타)이 돼 성공의 길이 열린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오로지 ‘의사만들기’만하면 무슨 큰 횡재나 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의사란 직업이 사회에서 각광받을 시대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와 있다. 의사들의 인기도가 점점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쉽사리 할 수 있다. 그 명확한 증거는 이 조그마한 나라에 우후죽순처럼 의·치과 대학이 새로 신설되고 있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대학에서 많은 의사들을 만들어 사회로 배출하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곳에서 배출되는 의사의 숫자가 늘어나 의사가 양적으로 충족될 지 모르나 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자신이 없는 부분이 있다. 신설대학의 교육시설이나 교수요원 등의 조건이 열악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조건하에서 양산되는 의사들의 자질을 보장할 수 있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자질이 부족한 의사 숫자가 늘어난다는 사실은 결국 의사의 신뢰도가 그만큼 낮아진다는 뜻이다. 단순히 의사의 숫자가 늘어나면 의사들 개개인의 수입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집단이기주의 발상에서만 의사들의 과잉배출을 반대하는 입장보다 의사들의 질적 문제에 대해 신중히 대처하는 침착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반면 의사들도 옛날 전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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