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근 교수의 윤리교실(6)]죽임으로서 치유한다: Healing by Killing

  • 등록 2005.03.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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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으로서 치유한다. 선문답과도 같이 본 글의 제목은 심오한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20세기에 발생한 인류의 가장 수치스럽고 비극적인 사건을 함축하고 있는 문장이다. 필자는 2003년에 이스라엘 남부 엘리엇 시에서 개최된 세계 의료윤리학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상연된 다큐멘터리 영화 제목이 바로 죽임으로서 치유한다(Healing by Killing)이다. 본 영화의 주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수치스러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태인 학살의 공범자는 바로 독일 저명한 의사들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은유적 표현에 의하면 아우슈비츠로 가는 철도의 침목을 처음 놓기 시작한 사람들은 바로 독일의 저명한 의사들이라고 언급하면서 의사들의 직업윤리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독일은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국가사회주의를 주창하면서 게르만 민족의 위대성을 부각하고 독일 민족의 유전적 우수성을 강조하고 보전하기 위하여 선천적 유전 질환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나 임산부들을 국가 주도하에 조직적으로 단종수술을 하거나 아예 죽이는 사업을 비밀리에 진행했다. 그런데 국가의 하수인으로서 이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사람들이 바로 독일의 의과대학의 저명한 교수와 의사들이었다. 본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당시 참여하였던 의사의 진술과 드레스텐 시에 위치하였던 수용장소 등을 추적하여 기록한 영화이다. 유전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을 죽임으로서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히틀러의 잘못된 믿음은 결국 독일 민족과 인류에 해를 준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유태인에 대한 인종 청소를 시도한 것이 아우슈비츠의 학살이다.


이러한 아우슈비츠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의하며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학살에 우리 모두는 언제든지 공범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다. 전후 전범재판에서 이러한 학살에 주모자로 기소된 사람들은 특별히 악마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 자신의 이웃과 가족을 사랑하는 평범하게 생긴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 한나 아렌트나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이 이러한 비인간적인 학살에 공범자가 된 이유로서 사유의 부족을 들고 있다. 사유라 함은 일상적으로 또는 관행적으로 하는 것에 대한 반성이라고 한다. 즉 한나 아렌트는 아우슈비츠에서 근무한 의사들은 당시 죄의식 없이 관행이란 이름 하에 일상의 일로 가스실로 보내야 할 유태인과 노역장으로 보내야 유태인을 선별하는 작업을 함으로서 학살에 동참 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에 바쁜 현대인들은 자신과 자신이 관행적으로 행하는 일에 대하여 반성하는 사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점차 불가능해 지고 있다. 혹시 우리 치과의사들도 관행과 일상이라는 이유 하에 비윤리적인 일을 아무 죄의식 없이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한국사회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아무 문제없이 관행적으로 행하던 일도 어느 날 비윤리적인 행위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신문 지면을 장식 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냉정한 비판적인 사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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