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윤리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일반적으로 "전문직‘이라 일컬어진다. 그러나 전문직이라는 우리말은 ‘어떤 분야에 대해 특별히 많이 알거나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만 읽힌다. 반면에 전문직을 일컫는 서구의 언어 속에는 전문직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속성과 함께 그런 직업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연원까지 포함돼 있다 이 말은 본래 ‘서약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마도 그 서약의 원조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일 것이다.
이후 이를 현대적 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세계의사협회의 제네바 선언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전문직이라 함은,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로 시작하는 이 선언을 지켜나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즉 전문적 지식과 인류 봉사에 대한 다짐이 전문 직업성의 두 기둥이다. 이렇게 전문적이고 선한 지식의 가치와 효용, 그리고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국가와 국민이 인정하면, 자신들의 업무영역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과 함께 적절한 수준의 경제적 보상이 주어진다. 이처럼 전문직업성은 전문직과 사회와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한 약속에 의해 성립한다. 이 약속은 인류에 대한 봉사라는 추상적 가치와 자율적 통제권이라는 사회적 권력을 교환하는 약속이라는 점에서, 효용가치를 교환하는 상업적 약속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바로 여기서 전문직 윤리와 일반 직업윤리가 갈라지게 된다.
치과의사란 직업은 평소에 아무리 잘 해도 최후의 단 한번의 잘못된 행동에 의해서 주변으로부터 심판받고 평생을 회한 속에서 지낼 수가 있다. 이러한 것은 치과의사란 직업 자체가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고, 보통 다른 직업에서는 양해될 수 있는 실수도 전문직이라는 특성 때문에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치과의사는 세 가지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가치관이고, 둘째는 전문직으로서의 의무와 자부심이며, 셋째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냉철한 합리주의다. 치과의사의 윤리를 바로 세울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세 가지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전문주의는 전통적 가치관을 현대적 삶에 접근시키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백성에 대한 사랑이란 추상적 개념이 여기서는 공공의 이익이란 현실적 목표로 전환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이타적 정신은 변함이 없다. 반면에 노동조합주의는 기본적으로 이기적 동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때의 이기주의는 다른 이해당사자의 합리적 요구를 충분히 인정한 뒤에 얻어지는 권리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전통적 가치관과 전문주의의 윤리의 키워드가 ‘이타주의’라면, 노동조합주의 윤리의 핵심은 이기주의라기보다는 ‘합리성’이다. 이타적 서비스 정신과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이야말로 치과의사 윤리의 근거가 돼야 한다고 본다.
전문직 윤리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수준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전문직 윤리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소홀이 취급된 것은 아마도 각 전문직종의 주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의사나 간호사들은 임상 상황에서 일상적으로 다양한 윤리적 문제에 부딪치기 때문에 의료윤리가 주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치과의사의 윤리는 의료윤리나 생명윤리보다는 전문직 윤리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치과의사 직무의 성격으로 보아서도 그렇지만, 보건의료윤리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치과대학생이 쓴 치과의료 윤리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