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36)]조선치과의학회의 설립과 운영 (下)

  • 등록 2005.04.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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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이꾸다 싱호가 회장이 되었다. 이후 조선치과의학회의 주 구성원은 경성제국대학과 경성의학전문학교 치과의사 및 개업 치과의사들이었다. 경성치과의학회가 창설되므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의 관계자들은 조선치과의학회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1932, 1933 및 1934년의 조선치과의학회 발표자들 중에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의 교직원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1932년 11월 5일 경성지회 설치를 결의하였다. 이것은 경성치과의학회가 출범한 후 조선치과의학회 조직 강화를 목적으로 지회를 두게 된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임상 경험이나 연구 업적, 연구하고자 하는 일, 혹은 실패 사례 등을 한정된 시간 내에 발표하고 검토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지회를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경성지회는 1월, 5월, 8월 3회 실습을 주로 하는 회의를 갖기로 하였다. 임원은 지회장 노자와 킨(野澤 釣) 간사 야지마 요시사다(矢島好定) 쿠스노키 쿠니오(楠國雄)·카와우치 카즈무네(河內一宗)를 임명하였다.


 조선치과의학회는 학회지‘조선치과의학회잡지’를 발간하였다.조선치과의학회에서는 회비는 납부하게 하고 잡지는 내지 않는다는 회원들의 반발에 ‘조선치과의학회잡지’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이 잡지는 1925년 6월 15일 창간되었으며, 1926년 이후 매년 2~4회 발행하였다. 이렇게 출발한 잡지는 1939년 14권 3,4호까지 총38권이 발간되었다. 이 잡지는 1930년 9월 20일 ‘조선지치계’가 창간되기까지 국내에서 치의학계 소식을 오늘에 전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 책의 내용은 원저, 종설, 초록, 강연요지, 내외국 문헌, 회보 등으로 대별된다.


총회의 진행 상황은 이러하다. 1934년 9월 30일 제14회 조선치과의학회의 총회는 경성제국대학의학부 부속의원 임상강의실에서 오전 8시 30분에 시작되었다. 경성제국대학 치과에 있는 한국인 조호연(趙昊衍)의 ‘치아전위의 2례’가 처음 연제이었고 약 2시간에 걸쳐 19개 연제가 발표되었다. 오후 1시에 강연이 시작되어 30개의 연제가 발표되었다. 관심을 갖게 하는 강연은 대개 특별강연이었다. 연사는 보통 일본의 대학교수가 맡았다.


오전 10시 30분에 조선치과의학회의 총회가 시작되었는데 이꾸다 싱호(生田信保) 회장은 개회사에서 “일본제국 영토 내에서 치과의학회 중 조선치과의학회는 4위의 빛나는 역사를 가진 단체이다. 연 4회 임상치의학연구를 주로 하는 잡지를 발행한다”는 등의 자랑을 하였다. 이어 우가끼 잇세이(宇垣一成)총독은 축사에서 치의학연구를 통해 조선치과의학회가 발전되었으며 또한 관민 협력으로 위생사상보급과 시설정비로 일반민중의 복지에 기여했다고 하였다. 이어 다가와(田川)장학금수여식, 회무 보고, 의사(議事)와 역원개선 한 후 장학금수상논문 발표가 있었다. 회의장 밖에는 고토우(後藤)풍운당 등 15개 치과재료상이 재료를 진열하고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오후 6시 연합 간친회를 마지막으로 총회는 모두 끝나게 되었다.
 출처:한국근대치의학사(출판:참윤퍼블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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