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47]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와 학교 교련

2005.07.28 00:00:00

전문학교가 되고나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京城齒科醫學專問學校)에도 배속장교가 배치되었는데 최초로 우미타 카나메(海田要) 중좌가 부임되었다. 그 조교로 고바타(小幡) 중위, 와타나베 기따로(渡邊崎太郞) 대위가 있었다. 퇴역한 와타나베 기따로는 학생주사로서 열심히 일에 임하셨다.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는 학교 교련을 가장 중시하고, 배속장교에 대해서도 충분히 학생을 지도하도록 의뢰했다. 때문에 그 성적은 우수했다. 대부분의 학교 사열 때는 대체로 사단장이나 조선군참모장이 와서 사열을 하는 것이 예의 이지만, 우리 학교에는 군사령관이 온 적도 있었다. 경성제국대학 이하 각 전문학교 가운데 경성치과의 성적이 우수하다는 평을 받았다.


나기라 다쓰미가 학교 교련에 왜 중점을 두었는가하면, 학교는 경성의 중심에 있고 학생의 일거일동이 주목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군사교련을 통해 모범을 보임으로써 일반사회로부터 악평을 듣지 않게 끔 하려는 염원이기 때문이었다.


1934년부터 1945년 종전 때까지 학생을 교정에 모으고, 조례 훈시를 하였다. 그때 학생들 앞에 있는 높은 단상에서, “학생이 규율을 어지럽히고 군사교관의 명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철권을 주어도 지장이 없다. 단 사적인 감정은 불가하다. 그 책임은 학교장이 책임진다.”는 강한 훈시를 하였다. 그 시절 소집되어 경성 사단에 온 병졸들이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이는 이미 일본에서 제작되는 무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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