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54)]조선치과의학회와 경성치과의학회의 숨은 이야기 (하)

2005.10.20 00:00:00

1926년의 학회였다고 생각한다. 이후 만주와 제휴해야한다는 나기라 다쓰미의 생각에서 당시 대련의원의 타나카(田中) 박사를 내빈으로 불렀다. 그 강연이 흰비드론켓테전극에 의한 PH의 측정이라는 테마였는데 우리들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게다가 강연 내용은 더더욱 몰랐다. 회원 일동 아연실색하며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 후가 재미있었다. 그때의 좌장 도내가와 세이지로오(利根川淸治郞)가 뭐라고 감사의 말을 할지가 볼거리였다.


“우리들에게 아주 필요한 게다가 어려운 문제를 평이하게 회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았던 것은 토네카와 뿐이었다.”고 일동 크게 웃었다. 이 강연을 평하여 모르는 켓테라고 별명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실로 재치 있는 일이었다.
1936년 10월17일 만철의원에서 열린 남만주치과의학회에는 나기라 선생과 야오 타로(失尾太郞)가 처음으로 출석 강연했다. 대련의원이 봄에 낙성식을 한 직후로 정말로 모던한 건물인데 여기에서 처음으로 다이알 전화를 보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천진, 북경, 봉천을 돌아 12∼3일 후에 돌아왔다. 그 후 매년 남만주치과의학회와 강사의 교류가 계속되었다.


1929년 하세카와쵸(長谷川町) 신교사 낙성 때의 학회는 실로 성대해 오오사카(大阪)에서 오노 토라노스케(小野寅之助), 큐슈(九州)에서 나가마츠(永松) 선생이 왔다.
1932년에 어떤 사정으로 조선치과의학회에서 나뉘어서 경성치과의학회를 만들었다. 9월 22∼24일 3일간에 걸쳐 정말로 성대한 그림 같은 광경이 하세카와쵸 강당에서 펼쳐져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의 위용을 자랑한 것이다.


제1회 경성치과의학회로서 토쿄오에서 시마미네 토오루(島峯徹), 오오사카에서 유미쿠라 시게야(弓倉繁家), 오오사카치과에서 다니와 분페이(谷和文平)가 각기 내한하였다. 간친회장에서 꼭 구문(歐文)잡지를 내도록 시마미네 토오루(島峯徹)로부터 요청받은 것이 생각난다. 이 때의 3인 모두 지금은 고인이 되어 재차 당시를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해가 지나는 것은 빠른 것으로 30 수년 전의 일이다.


경성치과의학회에 초대된 분들 중 대부분 잊었지만 의과치과의학전문학교 나가오 유우(長尾優), 가네모리 토라오(金森虎男), 히가키 린조(檜垣麟三)를 비롯, 나카무라 히라쇼(中村平藏), 마이야(Meyer) 선생 등의 강연은 지금까지도 머리 속에 남아있다. 이 외에 일본치과의학전문학교 도미타 미노루(豊田實), 시바타 마코토(芝田信), 토쿄오대의 츠즈키 마사오(都築正男)와 게이오의 오카다 미츠루(岡田滿). 오오사카 치학부의 나가이 이와오(永井巖), 오오사카 치과의 아사히 나(朝比奈) 교장, 하라 슈죠(原守藏), 시로기키 미키오(白數美輝雄), 미다니 히카루(三谷光) 등 이다.


쇼오후우 켄지(松風憲二) 사장은 미야츠 하지메(宮津一) 공장장을 데리고 매년 빠지지 않고 출석하셨다. 또 일본치과 평론의 타까츠 하지메(高津一) 주간도 수회 참석하여 재미있는 강연을 하였다. 무엇보다 특기할 것은 조선치과의학회에 참석한 동대의 미즈노(淸野), 오자와 료준(尾崎良純)을 초대해 그 강연을 경청한 것이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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