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 김신]질병의 책임

2009.07.20 00:00:00

김   신 <본지 집필위원>

 

 

질병의 책임

 

우리는 환자의 심한 질병상태를 맞으면서 흔히 환자의 자기 관리 실패를 나무란다. 치과의 양대 질환으로 꼽는 치아우식증과 치주질환은 환자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질병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치과의사들은 환자의 잘못된 구강위생습관을 고쳐주고 아직 습성화되지 않은 올바른 구강위생 관리능력을 높이려 애쓴다. 이것은 비단 질병이 생기기 전 단계 뿐 아니라, 질병을 치료한 이후에도 치료결과의 예후를 좋게 하고 수명을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울이는 이러한 노력에 비례하여 환자의 관리 수준이 과연 높아지던가? 오랜 시간을 통하여 습득된 환자의 습관이 한 두 번의 위생교육을 통하여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이다. 사람을 바꾼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이들에게 강력하고 절박한 동기가 부여되지 않고서는 결코 비가역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목숨이 오가고 수명에 영향을 미칠 그럴 정황이 치과 질환에서는 좀체 찾기 힘들지 않은가? 질병 관리를 위해서는 환자 본인의 자기 관리가 철저해 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것이 대단히 어렵다. 치과 질환은 환자 개개인에게 강력하게 자리 잡은 그만의 환경적 요소와 그로 인해 생긴 더 강력한 라이프 스타일에 기인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치과 질환을 문화적 질환, 사회적 질환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처한 경제, 사회, 문화적 환경 여하에 따라 건강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기 바쁜 이들에게 치실과 치간 칫솔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것이다. 부모가 맞벌이로 밤 늦어서야 귀가하고 아기는 연로한 조부모에게 맡겨진 경우, 아기에게 나타난 다발성 우식증에 대하여 할머니를 탓할 것인가? 그 부모를 탓할 것인가? 공부 스트레스로 늘 찌들리면서 집에 가면 엄마에게 야단만 맞아 집에 들어가기 싫어 오락실을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구강위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치과 질환이 개인의 자기 관리에 의해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는 사실 만으로 질병의 원인적 책임을 환자 본인에게 전가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사회적, 환경적 병인 때문이다. 질병을 철저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즉 본인의 무지와 태만 때문으로만 간주한다면, 사회적 보장을 위한 건강보험이 이를 돌보아 줄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치과 질환이 생기게 된 근저의 상당 부분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사회적, 환경적 요소가 개입되기 때문에 사회적 보호망이 필요한 것이다.


임상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에도, 질병의 성격 규명에 있어서 좀 더 거시적인 방향으로의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우리는 흔히 치아우식증의 원인을 미생물, 음식, 숙주 요인으로 나누어 미시적인 부분에 몰입한다. 그러나 정작 직접적인 원인은 환자의 라이프 스타일이요, 더 근저에는 환경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현재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구강위생에 철저해 질 수 없는 이유를 본인의 태만과 부주의로 돌리기 전에 그의 환경에 대해서도 이해해 주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렇다고 모든 원인을 환경 탓으로만 돌리자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환자 본인도 어쩔 수 없는 그런 환경을 이해해 주려는 자세는 우리가 환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생각된다.


구강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구강관리의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적 정보 전달의 수준이 아니라 관리 소홀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수준의 추궁으로 이어질 경우에는 환자의 반발을 사기 쉽고, 다시는 이 병원을 찾지 않게 된다. 그 환자는 속으로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랬느냐고. 배부른 소리 한다.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