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호 월요시론]실종되는 치과의사들

2009.07.27 00:00:00

월요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실종되는 치과의사들

 

한 단골환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 친구 아들이 교정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 치과가 소식도 없이 문을 닫은지 오래고 전화도 불통이라고 대신 좀 봐줄 수 없느냐고 했다. 그 원장님이 다음에 오면 장치를 풀고 보정기를 끼기로 했다고, 그 학생이 유학생이라 시간도 없으니 대신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한다. 교정이야 당연히 주치의가 끝까지 보아야 하지만 딱한 생각이 들어 마무리만 해주면 되겠다 싶어 오라고 했다.


환자는 중국에 유학중인 남학생인데 더벅머리의 순진한 표정이었고 어머니는 약간 다리를 절었다. 형편도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은데, 교정비에 유학비에 얼마나 살림이 빡빡할까 생각이 들었다. 어이없는 일을 당해 황당한 표정의 모자에게 걱정이 많았겠다고 하니 그래도 그전에 원장님이 잘해주어 다른 환자도 소개해드렸다며 적개심은 나타내지 않는 착한 심성이었다. 그런데 입안을 보니 교정이 아직 구만리였다. 정중선은 틀어지고 턱도 편위된 상태고 교합도 안맞았다. 유학으로 오랫동안 고아처럼 내봉처진 느낌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해당 구역의 구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난처한 목소리로 우리도 항의하는 환자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급한 환자들은 주변 원장들이 대신 봐주고 있는데 교정환자는 선례도 없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문제된 원장은 이미 보건소와 경찰에 ‘실종’ 신고가 되어있는데 아직 오리무중이란다. 어찌 이런 일이… 생각 끝에 환자 집 근처에 교정전문 후배에게 간단히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소개서를 써주었다.


지금은 나의 생리에 안맞아 교정진료를 하지 않치만 개업 초반에 한때 재미로 했었다. 그래도 연수회를 2년간 다니고 미국으로 단기연수까지 공을 들인 후였지만 첫 환자의 스트레스가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 목돈 진료비를 받을 때는 좋았지만 2년 이상 뒷감당을 할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그 돈이 내 돈 같은 생각이 안들어 평소 같이 집사람에게 안주고 치과 경비통장에 넣었던 생각이 든다. 여차하면 되돌려 주려고.


외모에 꽤나 신경 쓰는 곱상한 여성 프로그래머였는데 중간에 뭐가 이상하다고 불쑥 들르면 겁이 덜컥 나고 어디로 좀 ‘실종’되고 싶은 부질없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후배들을 보면 개업한다고 꼭 안정되지는 않는듯 싶다. 개업의 고액채무나 투자실패로 인해 개인 파산자가 생기고 이혼도 증가하고 이전치과, 실종치과가 심심찮게 화제에 오르고 더구나 불황 탓에 환자의 급감은 언제 끝날지 암울한 상태다.


얼마 전에 집안에 경사가 겹쳐 사위와 육춘네 가족들과 겸사해 식사를 했다. 조카가 늦게 도착해서 그래도 첫 직장의 공인회계사라고 새긴 명함을 돌리고는 첫 일성이 힘들어 죽겠다고 일주일에도 몇 번씩 때려 치겠다고 한단다. 처음 개업했을 때의 내가 생각나서 그래 얼마나 힘드냐고 위로하고는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뭔 줄 아느냐, 대통령일까? 막노동하고 땅파는 일꾼일까?” 쭈빗하길래 내가 웃으며 정답은 바로 “자기의 일”이라고 했더니 다들 웃었다. 그제서야 “그래도 뭐 설마 제가 진짜 직장을 그만 두겠어요?” 하며 제 부모를 위로했다.


치과의사는 좀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신이 내린 직업이다. 되기도 힘들고 떠나기도 힘든 족쇄에 묵여 일평생을 같이 해야 한다. 세계적인 경영사상가인 ‘말콤 글래드웰’은 일만시간의 법칙을 말한다. 어떤 분야든 숙달되기 위해서는 하루 3시간씩 10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또한 진정한 자수성가는 없다고 말한다, 부모의 지원과 사회적 환경, 문화적 유산 등 철저한 ‘그룹 프로젝트’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꼭 치과의사를 두고 말하는 듯 하다.


이런 직업을 그만두고 그 원장이 얼마나 힘든 일이 겹쳐 상상도 못할 일을 벌렸겠냐마는 대가를 치르고 빨리 직업에 충실하길 바란다. 그 교정환자는 잘 치료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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