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적막감 가득' 삼성서울병원 주변 개원가를 가다-“아동·노인환자 씨가 말랐다”

2015.06.16 17:59:09

7곳 치과 중 3곳 대기실 환자 1명도 없어…유동인구 대폭 줄고 예약 취소도 줄줄이


맥수지탄(麥秀之嘆). 쇠락해버린 옛 도읍의 정취가 이럴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남구 남부의 랜드마크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기관으로 자부해 온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이하 삼성병원) 일대는 북적이던 내원객들 대신 ‘적막감’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일원역을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고, 산책을 즐기던 노인들도 자취를 감췄다. ㅅ아파트에서 10년 넘게 경비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 모 씨는 “사스, 신종플루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삼성병원이 언론에 나오고 나서는 사람들이 밖엘 잘 안 다닌다”고 말했다.
삼성병원이 책임지고 있던 상권도 메르스의 공포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병원 정문 근처의 ㅅ약국 대표약사는 “내원객들로 늘 북적이던 곳인데 폐쇄조치가 있고 나서 발길이 완전히 끊겼다. 평소가 100이라면 현재는 5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매출도 마찬가지”라고 전했고, 병원 근처에서 죽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역시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 30년 경력 원장도 ‘환자 0’

삼성병원이 부분폐쇄 조치된 다음 날인 15일 일원동 일대의 개원가를 찾았다. 기자가 찾은 일원동 일대의 치과들은 편차는 있었지만 한결같이 “내원 환자가 크게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14일 오후 세시 경. 기자가 둘러본 7곳의 치과 중 3곳 치과의 대기실에는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삼성병원 정문 인근의 A치과의 한 스탭은 “메르스 환자가 속출하던 지난주까지 치과에 환자가 거의 없었다. 수술 예약 역시 전부 캔슬되고, 신환은 아예 없었다. 이번 주에는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인근의 다른 치과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B치과의 원장은 “원래 안 되던 치과”라고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이어 “보다시피 유동인구가 대폭 줄어들면서 환자 역시 발길이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시간까지 30년 경력의 이 원장이 본 환자는 ‘제로’였다.

삼성병원 발 유탄은 갓 개원한 C원장의 치과를 빗나가지 않았다. 약 1개월 전에 ㄷ중학교 인근에 제법 큰 규모로 개원한 이 원장은 “개원하고 3주차에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며 “소아환자 발치 케이스도 전부 취소되는 등 소아환자의 씨가 말랐고, 대형 병원서 오래 근무해 멀리서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60% 이상 줄었다”고 밝혔다. 삼성병원 부분 폐쇄와 대치초·중학교, 학원의 휴교가 일원동 학부모의 불안감을 증폭시킨 셈이다.

실제, ㄷ초등학교 근처의 D치과 스탭은 “학생 치과주치의사업을 하고 있어 하루에 20~30명의 초등학생이 검진을 받으러 왔는데, 지금은 아예 없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는 메르스가 수그러들 때까지 구강검진을 자제하라는 통신문을 띄우기도 했다.

대치동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4일 휴교에 돌입, 현재는 휴교가 풀린 상황이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대치동의 한 원장은 “휴교령 후 환자들도 패닉상태에 빠져 자취를 감췄다가 회복되는가 싶더니 예약 취소율이 다시 올라가는 상황”이라며 “휴교 기간에도 학생 환자들이 거의 없었다. 학원가를 중심으로 유동인구도 많이 빠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정보 태부족’ 막연한 불안감이 문제

일원동 개원가의 원장들은 바이러스 자체보다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의 ‘막연한 불안감’이 사태를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경영 악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C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치과 블로그의 유입 경로에 따르면, 불안감이 극에 달했던 지난 9일의 유입 키워드 1위가 ‘메르스 치과’(15%)였으며, 그 이후 유입 키워드 중 3~6위까지가 일원동 메르스, 메르스, 치과 메르스 등의 단어였다. 치과를 이용하려는 환자들 역시 정보를 갈구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삼성병원 인근에서 23년 간 운영한 E원장은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본다”며 “어르신 환자가 많은데 다들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치과 감염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시간을 더 할애해 환자와의 대화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C원장 역시 “정부가 정보공개를 꺼리는 사이에 환자분들은 메르스의 실체를 모른 채 막연한 두려움에 빠져 있는 것 같다”며 “치과에 책자를 비치해 메르스에 대해 알리고, 철저한 감염관리, 최선의 진료라는 정공법으로 승부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한국·WHO 합동평가단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투명하고 신속한 정보공개가 늦어진 게 초기대응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라는 뼈아픈 진단을 내렸다. 

조영갑 기자 ygmonkey@dailydent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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