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요새 치과 출근 즐거우신가요?

2015.06.26 17:14:16

댓글·SNS·육성으로 살핀 원장들의 ‘행복론’

경영악화에 메르스 덮쳐 발길 무거울 때 많아
“그래도 내 치과” 한명이라도 신명나게 진료


소설가 김 훈은 그의 수필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이렇게 말했다. “밥벌이는 밑도 끝도 없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 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중략)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치과의사는 아침마다 출근을 한다. 교수도, 원장들도, 페이닥터도 출근을 한다. 밥을 벌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 간명한 법칙 앞에 도리는 없다. 그러나 ‘신성한 근무지’로 향하는 발걸음의 무게는 각자 다르다. 이 무게감은 행복과 연동돼 있다. 그래서 묻는다.
‘오늘 치과로 출근하는 원장님들, 즐거우신가요?’

# “일 싫어요” 회의감 들때도

최근 치과의사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치과 출근하는 게 즐거우신 분도 계신가요? 궁금합니다. 치과의사 생활이 너무 괴롭다는 글들이 올라오는데 이 일이 즐거워서 하시는 분도 계신가요? 어떤 면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나요?”

이 글에는 다양한 댓글들이 달렸다. 도리가 없어 밥벌이에 나선다는 얘기가 다수였다. “전 출근하기 너무 싫습니다. 맛집기행이나 다니고 싶네요.” “일 싫어요” “솔직히 일 하는 거 싫죠. 돈 많으면 이거 안 할 거 같습니다.” “하루 중 제일 좋은 시간이 퇴근하는 차 안에서 음악 듣는 시간이에요ㅠ”

가뜩이나 경영이 악화된 개원가를 메르스가 덮치면서 원장들의 발은 더 무거워졌다. 강남구의 5년 차 개원의 A원장은 “요새는 출근이 두려울 정도다. ‘오늘은 환자가 얼마나 올까’하는 생각이 들면 가끔 일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들기도 한다. 요새 같아서는 스탭들 얼굴보기도 좀 민망하다”고 말했다.
최근 환자와의 의료분쟁에 휘말린 8년 차 B원장의 말도 무겁다. 그는 “컴플레인이 커지니 환자가 또 찾아와서 난리칠까봐 출근길이 두렵다”며 “그동안 잘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터지니 일 자체가 싫어지기도 하더라”고 고백했다.

가정과 육아, 진료까지 챙겨야 하는 여성 치의들의 출근길도 가볍지 않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C원장은 “내 딴에는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와 치과 일을 동시에 챙기는 게 보통은 아니다. 가끔 출근길에 ‘당분간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 “돈에서 사람으로” 환자 보는 관점 바꿔

행복은 내밀한 감정이고, 그 기준은 제각각이다. 세네카는 ‘행복론’에서 “그대보다 행복한 자 때문에 괴로워하는 한 그대는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했다. 11년 차 D원장의 말도 비슷하다.

“나도 처음 몇 년 간 동료의 ‘그로스’를 비교하고, 남의 치과 체어 수를 비교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놔버리게 되더라. 환자를 보는 관점이 ‘돈에서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얼마 전에는 어린 환자에게 ‘본받고 싶다’는 편지를 받았다. 한 명의 환자도 신명 나게 보고 있다.”

다른 원장 역시 사람을 떠올리며 가벼운 출근길을 맞는다. 10년 차인 E원장은 “개원 처음부터 함께 치과를 지켜 준 직원들과의 유대관계가 너무 재밌다. 그들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출근길이 즐겁다”고 말했다.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이렇게 변용이 가능하겠다. “그래봤자 치과, 그래도 내 치과”. 결국 이 글을 읽는 원장님의 일터는 치과이기에.
한 자리에서만 20년 넘게 개원한 F원장은 이렇게 전한다. “사실 먹고 사는 게 전제돼야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허름한 2층 내 치과를 볼 때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내 이름을 보고 환자들이 찾아오니까”. 16년 차 G원장 역시 “나는 내가 치과의사라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아서 치과 가는 일이 늘 즐겁다”며 웃었다.

다시 김 훈으로 돌아가자. 그는 수필 말미에 이렇게 썼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조영갑 기자 ygmonkey@dailydental.co.kr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