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생태계 파괴 주범 ‘플랫폼’ 치과도 사정권 임박 했나?

2021.12.15 17:31:48

‘강남언니’, ‘닥터나우’ ‘굿닥’ 등 날아오르는 의료 중개업
직능단체 저지 불구 성장세... 법 다툼까지 갈등만 심화
정부 “직능단체 업계 규제 말라” 무책임 편들기 의료계 분통

“치과 내 모바일 기반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의 확장은 필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백신 부스터 샷 접종을 위해 오랜만에 타 진료과를 찾은 김수철(가명) 치과원장. 김 원장은 그곳에서 A플랫폼 기업에서 운영 지원하는 원내 환자 관리 프로그램을 접하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접수부터 진료실 안내까지 환자의 편의성을 확실히 높여준다고 느낀 것.


하지만 김 원장은 진료 후 핸드폰으로 쏟아지는 후기, 별점 요청에 아연실색했다. 심지어 해당 요청은 설문에 응할 때까지 반복해서 이어졌다. 이 같은 실태에 김 원장은 일종의 공포감마저 느꼈다. ‘이런 거대 플랫폼이 치과까지 점령한다면?’이라고 생각하자, 가뜩이나 경쟁이 생활화된 치과 개원가가 더욱 피폐해질 것이라는 미래가 그려진 탓이다.


# ‘공룡’ 뛰어드는 의료계 플랫폼 시장
모바일 기반의 인터넷 통신 환경이 정착하며 앱 기반의 중개업인 ‘플랫폼’ 업계 규모 또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플랫폼’이란 좁은 의미에서는 네트워크 기반 경제 시장을 뜻하며, 흔히 소비자와 공급자를 온라인이나 모바일 앱을 통해 중개하는 일체의 산업을 일컫는다. 요식업계는 ‘배달의 민족’, 숙박업계는 ‘야놀자’, 부동산업계는 ‘직방’ 등이 대표적이다. 의료계에서는 ‘강남언니’, ‘굿닥’, ‘닥터나우’ 등이 있다.


우려를 사는 점은 이 같은 플랫폼 기업의 의료계 확산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공룡’이라고 묘사되는 거대 기업의 의료계 플랫폼 투자 사례도 부쩍 증가 추세다. 가장 최근 들어서는 카카오가 의료계의 플랫폼 다수와 잇달아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국내 대형 제약사인 보령제약 또한 관련 플랫폼 업체와 제휴를 맺었다. 이 밖에도 다수 중견·대기업이 의료계에 직·간접적인 투자에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코로나19가 비대면 문화를 촉진시키며, 플랫폼 업계의 의료계 진출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를 통한 비대면 진료 횟수도 폭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약 2만 건에 불과했던 원격진료 환자 수가 불과 1년 반 만인 지난 10월에는 3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의료계 플랫폼 산업도 ‘날아오르고’ 있다. 병원 예약·접수 앱 ‘굿닥’은 월 활성사용자수가 150만 명을 돌파했다. ‘닥터나우’는 출시 10여 개월 만에 누적 이용자수 50만 명을 기록했으며, ‘강남언니’는 가입자만 300만 명이 넘은 지 오래다.


# 의료계 단체 vs. 정부 대립각 조성
이 같은 플랫폼 기업의 의료계 진출에 관련 단체는 즉각 저지에 나선 것은 물론이고 소송전도 불사하고 있다. 이는 플랫폼 기업의 시장 확산이 의료 생태계를 위협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의 발로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의료 행위를 물질적 재화와 동일시해, 플랫폼 기업이 비교·경쟁 구도를 조성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문제제기도 강하게 일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이하 의협)는 미용·성형 의료플랫폼인 ‘강남언니’와 지금까지 수차례 충돌했으며, 회원에 가입 및 활동 지양 권고를 내리고 관련 학회에서도 사용 주의 성명을 내는 등 다각적인 제재를 이어오고 있다.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의 대응은 더욱 격렬하다. 약사회는 원격 진료 및 배달 약 플랫폼 ‘닥터나우’를 상대로 업무방해 등의 건으로 송사까지 진행 중이다. 앞서 약사회는 닥터나우가 급격히 시장에 확산하자, 규탄 성명을 발표한 것은 물론이고 지역 약사회에서는 해당 기업 앞 시위까지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직능단체의 반발이 무색하게 최근 정부에서는 잇달아 플랫폼 업계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려,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플랫폼 기업의 영업 행위에 대해 합법 의견을 냈다. 특히 복지부는 ‘강남언니’의 경제적 대가 없는 환자 후기, 환자를 기망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선의 비급여 가격 정보 제공 등과 같은 행위는 불법이 아니라는 판단을 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1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업계 규제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6조에 따른 사업자단체의 금지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직능단체를 제재하고 나섰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무책임하게 업계 편들어주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 같은 추세에도 불구하고 치과는 ‘아직까지’ 대형 플랫폼 기업이 출현하지 않은 상태다. 이미 다수의 플랫폼 기업이 설립돼 서비스에 나섰지만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비급여 진료비 공개 및 보고 의무 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이를 악용한 기업이 출현해 치과 개원가에 피해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들이 향후 더욱 더 확산하고 거대화할 경우, 현재도 비합리한 치과 수가 체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점도 지적된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B의료 중개 플랫폼에서는 치과의 비급여 항목별 진료비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출처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 제시해, 논란을 산 바 있다.


치과 플랫폼 구축 꿈나무까지 등장했다. 최근 열린 한 소프트웨어 전시회에서는 지역의 모 고교 개발팀이 제작한 치과교정AI 진단 및 병·의원 추천 프로그램이 일부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치과의 특수성으로 인해 거대 플랫폼이 출현하기는 ‘일단’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다만, 강남과 같이 일부 치과 개원 과열 지구의 경우에는 플랫폼이 점차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MZ세대로 대변되는 2030은 모바일 앱 사용에 익숙한 만큼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치과 전용이 아니더라도 ‘강남언니’로 대표되는 대형 의료 플랫폼에서는 이미 치과를 하나의 항목으로 다루고 있어, 이들의 성장세가 치과계에 미칠 파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대해 치과 경영 전문가 정기춘 원장(팀메이트치과의원)은 “치과나 의료계뿐 아니라 플랫폼의 확산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막을 수 없는 시류”라고 짚었다.


그러나 동시에 “ 다만, 일부 치과 밀집 지역에서는 플랫폼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 모바일 검색에 익숙한 MZ세대가 치과 내원이 높아지는 연령이 됐을 때의 변화도 섣불리 예견하기는 힘들다”는 우려 섞인 견해를 제시했다.

천민제 기자 mjreport@dailydent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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