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없어 음식을 못 먹는 70세 노인과 치성 감염으로 앓는 35세 싱글맘 중, 누구를 먼저 치료해야 할까?

  • 등록 2024.10.02 16: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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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68)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김 원장은 수도권 외곽, 다문화 가정이 많은 지역에 개원하여 지역사회의 구강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치과의사다. 김 원장의 치과는 경기도에서 주관하는 지역사회 취약계층 치과 치료 보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레진 수복부터, 필요한 경우 심의를 거쳐 임플란트까지도 지원한다. 그러다 보니 예산 문제로 지원 대상자가 분기당 15명으로 한정되어 있다. 2024년 3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김 원장에게 남은 대상 지원 수는 한 명이다.

 

그런데, 최근 치과에 내원한 환자 두 명이 마음에 걸린다. 70세 독거노인 박 할아버지는 최소 연금 생활자다. 현재 그는 치아 상실 및 광범위한 치관 파절로 고형 음식을 저작하기 어렵고, 이에 따라 영양결핍 증상을 보이고 있다. 당뇨까지 있는 박 할아버지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전부 틀니를 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게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35세 웡 씨는 두 어린 자녀를 둔 베트남 출신 싱글맘이다. 파트타임 근무로 생계를 유지하는 웡 씨는 #16, 17의 고도 우식증으로 인한 통증과 염증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밤에 잠도 잘 이루지 못한다. 이미 감염이 이차 공간으로 퍼지기 시작했는지, 얼굴도 부어 보인다. 빨리 치료를 받지 못하면 응급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다가, 웡 씨는 아이들 때문에 다른 지역의 치과 치료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으러 갈 수도 없다. 박 할아버지와 웡 씨는 모두 치료비가 없지만, 빠른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다. 김 원장, 이들 중 누구를 치료 보조 프로그램의 지원 대상으로 올려야 할까?


의료 자원은 언제나 부족하고, 치과의사를 포함한 의료인은 의료 자원을 배분하는 결정을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하는 경우를 마주합니다. 코로나19 시절 감압병실을 어떤 환자에게 할당할지, 현재의 의정갈등 상황에서 부족한 응급실 자원으로 어떤 환자를 치료할지 같은 문제 말이지요. 치과라고 당연히 예외는 아닙니다. 위 사례 같은 경우죠. 선생님은 딱한 두 환자 중,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물론, 의료계에서만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죠. 우리가 누리고 사용하는 자원은 모두 부족합니다. 하지만, 자원 부족 문제는 의료계에서 더 극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뇌사 상태에 빠지면서 심장을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이 심장을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여, 다섯 명에게 심장을 나누어서 기증할 수는 없지요. 의료 자원은 절대적 결핍 상태에 있고, 의료계와 사회는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자원을 받을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문제는, 의료 자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각 환자에겐 다 당연히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죠. 이것을 객관적인 잣대로 따져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최종적으로 “어떤 목숨이 살 가치가 있는가?”를 결정하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이전 어떤 학자는 이 문제를 놓고 “비극적인 선택”이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 위 사례로 설명해 보자면, 박 할아버지와 웡 씨 둘 중 한 명만 김 원장은 무료로 치료를 해줄 수 있지요. 그리고 두 환자 중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환자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의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언제나 비극적인 일이기에, 그는 이를 비극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두 환자 중 치과의사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른다거나, 두 환자의 직업이나 성격, 가족 구성원 수 등 논란이 될 만한 요소를 가지고 누구를 치료할지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겠죠. 예컨대 1960년대 미국, 아직 신장 투석을 정말 소수의 환자만 받을 수 있던 시절에 한 병원은 누구를 투석 대상자로 삼을지 결정하기 위해 위원회를 꾸려 운영했습니다. 이들은 환자의 직업, 가족 수, 종교 등을 기준으로 해서 투석 대상자를 결정했어요.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유출되면서 이 병원은 미국 전역에서 두드려 맞았죠. 투석을 받느냐 마느냐는 환자의 생명 유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인데, 왜 이런 자의적이고 심지어 모호한 요인들을 가지고 결정을 내렸냐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었습니다.


따라서 누구를 치료할지 결정해야 하는 의료인은 우리와 사회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가지고 결정을 내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런 논의를 하는 분야가 한 번쯤 들어 보셨을 정의론이라는 분야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워낙 샌델과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유명해서 마치 그가 정의론을 대표하는 학자인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지만, 현대에 이 분야를 정립한 학자는 미국 정치철학자인 존 롤스지요.


롤스는 말합니다. 우리는 함께 협력하기 위해 사회를 꾸렸으며,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선 이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야만 사회에 참여하는 이들은 공동의 일에 힘을 보탤 것이고, 사회는 개인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모두가 노력에 대해 똑같은 결과로 보상받는다거나, 각자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너무 심하게 차이가 나면 사람들은 그 사회가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이에 대한 롤스의 답은 가장 어려운 사람에게 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제도가 가장 어려운 사람을 챙긴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확실한 보장이 확립되어 있기에 공정에 대한 의심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생각을 의료적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위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박 할아버지와 웡 씨 중 치과 치료와 관련하여 가장 어려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위의 내용에 근거한다면 웡 씨일 거예요. 박 할아버지는 식이 조절이나 다른 대안을 마련해 볼 수 있지만, 웡 씨는 당장 감염에 대한 치료를 받는 것 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의 치아 감염 상태와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인한 치료 대안의 부재는 웡 씨를 현재 치과와 관련하여 가장 어려운 환자로 만들지요. 그렇기에, 롤스의 생각에 따르면, 김 원장은 웡 씨를 먼저 치료해야 합니다.


그럴듯한 결정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견이 있으신지요. 당연히, 롤스의 생각만이 유일한 정의론의 대답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샌델도 있고, 여러 정의론적 접근은 다른 답을 제공합니다. 여기에서 어느 정의론이 맞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거예요.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사회가 우리에게 자원 사용에 대한 정당성을 물어보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충분히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를 포함한 의료인은 정의론에 대해 알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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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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