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4천개의 십자가
<신순근 신부·꽃동네 회장>

2001.01.13 00:00:00

4천개의 십자가! 갑자기 십자가라는 말이 튀어나오면서 그것도 4천 개나 되는 십자가라고 하니까 왠지 썰렁해지는 느낌을 갖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하지만 4천개의 십자가가 한 장소에 꽂혀 있는 데가 있다. 바로 필자가 살고 있는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내 넓은 마당의 한 쪽에 마련된 작은 동산이다. 말이 동산이지 조경에 쓰이는 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울타리라는 표현이 더 나을 것 같다. 그 앞에는 평퍼짐한 좀 넓은 공간이 있는데 평지는 물론이고 경사진 곳 언덕위에까지도 빼곡하게 십자가가 꽂혀 있다. 또 4천개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3천개가 조금 넘는다. 더 꽂을 곳이 없어서 의미가 중요한 것이지 숫자가 문제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그만 두었다. 십자가 한 개의 길이는 약 40cm정도, 굵기는 어른 손가락 3개정도를 합친 정도로 흰 색으로 되어있다. 개구장이들이 뽑아서 칼싸움하기 꼭 맞는 크기이다. 이렇게 말하면 짐작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우리나라 전국에서 하루에 벌어지고 있는 낙태시술을 가리키는 숫자이다. 일년에 우리나라에서 약 1백50만의 태아들이 시술대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을 필자 같이 계산이 어눌한 사람들을 위해서 열 두달로 나누고 다시 30일로 나누니 대략 4천이라는 태아들이 하룻동안에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현대를 죽음의 문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여러 가지 이론을 전개하면서 왜 죽음의 문화라 하는지 설명할 입장은 아니다. 그저 필자가 살면서 보아온 여인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그칠까 한다. 간혹 상담을 하거나 또는 여러 기회에 만나는 부인들을 보면 어두움이 깃들어 있는 분들이 종종 있다. 그냥 피부가 검거나 어떤 고민이 있어 나타나는 그런 우울함이 아닌 무언가 무거운 어두움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아무리 화장을 짙게 해도 그 어두움은 감추어지질 않는다. 죽음의 어두움인 것이다. 다시 말해 낙태, 유산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는 말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생명을 생산하는 공장이 죽음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바뀐다면 그 공장이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게 바뀌는 것이다. 기계도 바뀌어야 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거래처가 바뀐다는 것이다. 폭력과 가치 혼란이 거래처로 등장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공장 주인의 허락도 없이 벌어진다면 그 결과는 더 끔찍할 뿐일 것이다. 다시 4천개의 십자가로 돌아가자. 4천명의 태아의 무덤을 상징하는 것이다.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헌데 필자는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한 수녀님이 귀뜸하기를 어른들과 함께 오는 아이들이 십자가를 뽑아서 칼싸움을 하며 논다고 했다. 그래, 그 아이들이 장성했을 때에는 이 무덤이 없어져야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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