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소리>
현대인의 족쇄
송윤헌(강남치과의원 원장)

2001.03.31 00:00:00

“요즘 휴대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는 말로 시작되는 아내의 은근한 압력에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동시에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내의 청을 흘리면서도 정작 나는 휴대폰을 몸의 일부인양 애지중지하며 떼어놓지 않고 다녔다. 그러다 자동차를 집에 두고 버스로 출퇴근을 하면서부터 아예 휴대폰을 집에 놓고 다니게 되었고, 아내에게 “그동안 불편했지?"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차와 휴대폰을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선심(?)까지 쓸 수 있었다. 차와 휴대폰 대신에 지갑 속에 버스카드와 전화카드를 넣고 다니는 생활을 하면서부터 내게 다가오는 것은 불편함보다는 오히려 넉넉한 여유와 홀가분하다는 기분이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신경을 쓰기보다는 느긋하게 앉아 신문이라도 펼쳐볼 수 있는 여유와 주차할 곳을 찾아 빌딩 주위를 돌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즐길 수 있었고 급한 일(?)을 보는 중간에 불쑥 울려대는 전화벨에 당황할 필요도 없다. 자동차와 휴대폰, 둘 다 나의 편리함을 위해 소유하게 되었지만 문득 이것들이 나에게 채워진 족쇄가 아니었던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나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인들은 모두 바쁘고 복잡한 생활을 하고 있다. 올림픽의 표어를 살짝 비틀어서 이야기하자면 더 빠르고, 더 새롭고,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추구하고 있다. 현대라는 시대가 끊임없이 발전과 성장, 진보를 요구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생활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숙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도구들이 생겨났지만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옭죄는 족쇄가 되어 다가오는 것 같다. 세상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 여유로운 생활을 위해 고안된 도구들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에 의해 구속받고 없으면 불안해진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편리함 이상의 어떤 것을 앗아가버린 것이 아닐까. 진정한 편리는 생활에서의 여유를 얻고 그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아무리 편리한 도구라도 그 여유를 앗아간다면 그것은 이미 편리가 아니다. 불편하기는 했지만 여유로왔던, 휴식과 여가가 가능했던 과거의 어느 시간이 자꾸만 애틋해지기만 한다. 기다림이 답답함이 아닌 떨리는 설렘으로 다가오던 그 시간이……. 잠시, 우스운 상상 하나를 해본다. 화상통신도 가능하다는 IMT-2000이 상용화되고 일반화되면 휴대폰보다 얼마나 편리하냐고 외치면서도, 여유를 즐기는 시간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기 위해 의관(?)을 정돈하고 거울 앞에서 흐트러진 표정을 추스르며 허둥거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이라는 편리함과 그에 따라오는 구속 모두를 벗어던지고 마음의 여유와 행동의 느긋함을 즐기고 싶은 하루이다. 오늘 저녁에는 오래간만에 아내와 함께 잠시나마 산보를 나가야겠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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