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희망 한봉지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2001.04.28 00:00:00

“정말 처자식만 아니라면 어디로 도망치고 싶습니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서 자동차 정비소를 들렀다가 주인한테 받은 아침인사다. “요즘 어떻습니까?" 무심코 건넨 나에게 그는 이렇게 한숨을 섞어 돌려주었다.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늘 친절하고 밝기만 한 그에게서 나온 외마디였기에 예사스럽지 않게 들렸다. 인생살이가 늘 그렇지만, 요즘처럼 힘든 때도 없었던 것 같다. 모두 죽겠다고 난리들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파리나 쫓으며 세월을 보내고, 샐러리맨들은 빠듯한 월급봉투에 애간장을 태우고, 벤처정신을 외치며 일어났던 사람들은 절망의 무릎을 꿇고 있다. 사는 모양새야 다 다르겠지만 사정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이렇다 치더라도, 미래라도 기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우리 같은 서민의 몫은 아닌 것 같다. IMF인가 뭔가를 거치면서 잘사는 사람들만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허리가 휘어 간다니 정말 힘 빠지는 세상이다. 이런 경우, 그나마 희망이라면 자식농사라도 잘 짓는 것인데, 요즘 학교교육 돌아가는 꼴을 보면 거기 보내서 성공시키긴 애당초 글러먹은 판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 도망치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단다. 무슨 빚쟁이들 얘기가 아니다. 이민 이야기다. 요즘 이 말이 저자거리 유행어다. 얼마 전 삼성동 코엑스 전시관에서 ‘해외 유학, 이민 박람회"란 게 열렸었다. ‘별 박람회도 다 있구나" 생각했는데,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단다.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30-40대의 젊은 회사원들이었다고 한다. 모 신문에 보니 30-40대의 67%가 이민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땅의 기둥세대가 도망가려하고 있는 것이다. 어저께 LA타임즈에는 한국의 고소득층들이 해외이민 러시를 이루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부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진 모양이다. 그래도 모국인데, 이들이라고 어찌 도망치듯 떠나고 싶겠는가. 이들이 떠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은 희망을 찾는 존재이다. 인간이란 동물은 희망이 없는 곳에는 결코 있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 희망이 없으니까 떠나는 것이다. 희망, 정말 그것이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일까.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한 그루 나무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찍혀도 다시 움이 돋아나고, 그 가지가 끊임없이 자라나고, 비록 그 뿌리가 땅 속에서 늙어서 그 그루터기가 흙에 묻혀 죽어도, 물 기운만 들어가면 다시 싹이 나며, 새로 심은 듯이 가지를 뻗습니다." 한 그루 나무에도 떠나지 않는 희망을, 사람 사는 이 세상에서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땅의 곳곳에 묻혀 있는 희망을 생각해 본다. 아직 싹을 내지 못한 우리 가정의 희망을 생각해 본다. 다시 움이 돋아나고 가지가 자라나야 할 이웃의 희망을 생각해 본다. 무심코 걸어다니는 길가에 묻혀있는 희망의 그루터기를 생각해 본다. 누군가 물만 주면 다시 싹이 나고 새로운 가지가 뻗어나올 희망을 생각해 본다. 저녁에 집으로 오다가 자동차 정비소에 들렀다. 그리고 딸기 한 봉지를 건네며 말했다. “처자식 생각해서라도 이거 드시고 도망치지 마세요" 그가 빙그레 웃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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