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로마 민중의 선택
김성구(본지 집필위원)

  • 등록 2003.1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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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저는 조국 로마를 위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세계를 정복했다. 시이저는 로마를 최강의 국가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민중의 인기를 얻는 등 로마의 영웅이었다. 그는 로마를 위해 많은 것을 이루며 로마인에 의한 공화제를 했으나, 욕심이 계속되어 종신독재관이 되었고 드디어는 황제의 위치를 탐하였다. 하늘을 찌르던 로마 민중의 그에 대한 지지는 이런 욕심으로 인해 점차 멀어져 갔고 드디어 시이저는 반대파의 혁명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시이저를 앞장서서 죽인 대표자중에 믿던 부하인 부루투스 라는 사람이 있었다. 부루투스는 민중에게 말한다. 나는 시이저를 사랑했다. 그러나 로마를 더 사랑했다. 부루투스는 자신의 신념에 의해, 로마를 위해, 자신을 아끼던 시이저를 죽였다. 그는 부와 명예를 준 시이저보다는, 민중에 의해 다스려지는 로마를 바랬다. 그러나 그는 그가 바라던 로마를 보지는 못했다. 뒤이어 나타난 안토니우스의 시이저의 공적과 연민에 대한 연설에 설득 당한 민중들의 분노가 일어나서, 결국 부루투스는 로마 밖으로 추방되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아쉬운 결과가 일어났을까? 과연 부루투스의 잘못이 무엇이란 말인가?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은 그들이 국민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정치가들은 강위에 떠있는 배와도 같다. 국민의 뜻을 바로 아는 자가 강위에 떠있는 배가 된다. 지도자는 국민이라고 하는 강의 흐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국민의 뜻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는 강위의 부표인 배에 불과하다. 정치가란 국민의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를 알고 국민의 마음에 따른 결정을 대신 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은 국민이 모를지라도 먼 훗날 나의 결정이 옳다는 걸 알아주리라는 건 지적 오만이며, 그런 마음의 출발점엔 독재의 마음이 함께 한다. 잘못된 결정이건 아니건 그건 국민이 결정할 일이지 몇 사람의 정치가가 결정할 일은 아닌 것이다. 국민의 마음은 흐르는 강과도 같아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일정한 흐름은 있으나 나타나는 양상은 천변만화 한다.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는 각 당들이 일정한 정책을 갖고, 또한 나름대로의 색깔을 유지하며, 국민의 선택을 구하여 왔다. 요즘 우리의 앞날을 쥐고 있는 정치가들은 어떠한가? 국민을 소대원으로 하는 소대장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우리의 정부와 여당에게 국민은 바란다. 우리 국민은 군인이 아니다. 지도자가 명령하는 대로 무조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전쟁터의 소대원이 아니다. 거기에다 대고 마음을 몰라준다라고 한다면, 노를 던져 버린 후 배 위에서 푸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야당에게 말하고 싶다. 야당의 정책이 갖고 있던 일정한 색깔을 시시각각 바꾸기 시작한다면, 국민의 눈에는 당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아볼 수가 없다. 내놓은 정책도 없었으면서 반사이익과 카멜레온 같은 전략 속에 묻혀서 국민의 마음이 돌아왔다고 착각을 한다면 할말은 더더군다나 없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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