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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1 고대의 치의학 - 종교와 현실에서의 방황 - 이집트의학고대 이집트에서의 의학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였으며 이는 피라밋과 미이라를 통하여 영생불멸의 신앙과 함께 그 당시의 훌륭한 의술에 대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이집트의 프토레미왕(Ptolemy기원전323-285년) 때는 알렉산드리아에 뮤지엄(Museum)이라는 세계최고의 종합대학을 설립하여 인체의 해부와 생리에 대한 폭 넓은 연구가 있었으며 현재의 치과기구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많은 기구들이 만들어져 이용되었다 한다.상폴레옹/J.F. Champollion1790-1832에 의해 로제타 스톤과 피레섬의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문자에서 클레오파트라의 P.L.O부터 해석되기 시작한 에집트의 상형문자는 제5왕조(고왕국, 기원전2700년)에서는 궁정에 의사와 치과의사가 사제로 상주하고 있었음이 파피루스에 기록되어 전하며 또 여기에 치은등의 건강증진을 위한 약제와 농양이 있으면 절개하여 배농하였으며 치통에는 진정제를 처방한 기록이 전해진다. 이집트에서는 여러가지 병을 전체적으로 다루는 의사는 없었으며 어쩌면 현대의학처럼눈 의사, 이 의사, 머리 의사, 위병 의사 그리고 그밖에 드문 병이나 신체이상을 다루는 의사들도 있었으며 위생관념이 정립되어 깨끗한 의복과 씻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당시의 의사들은 사제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일생을 사제이자 의사로 지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