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만나는 철학이야기>
철학아카데미 이정우 원장
미셸 푸코 : 담론, 권력, 주체 <6>

  • 등록 2003.07.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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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중) 푸코는 고전 시대의 병원인 제네랄 오피탈은 병자, 농부, 상이군인, 낙오병, 실업자, 극빈학생, 광인 등이 섞여 있는 ‘혼재공간(heterotopia)’이었다고 말한다. 본래 하나의 공간은 한 종류의 인간을 담게 돼 있다. 군인의 막사에는 군인들이, 스포츠 경기장에는 선수들과 관중들이, 도서관에는 학생들이 있다. 그러나 제네랄 오피탈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에 관계없이 분류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엇 “이어서”가 아니라 무엇이 “아니어서” 혼재공간에서 섞이게 된다. 즉 그들은 서로 다른 인간들임에도 당대의 절대왕정과 합리주의가 거부한 인간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혼재공간에 수용됐다. 부정의 논리를 통해서 분류된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분류는 늘 권력을 함축한다고 푸코는 말한다. 당대의 의사의 성격 또한 특이했다. 그들은 의사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사제들이자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은 시대의 질서를 이탈한 사람들을 교화하고 교정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낙인, 화형대, 감방, 지하감옥 등을 관리했다. 푸코는 당대의 경제학적 맥락을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 부르주아 사회의 ‘모랄’을 지적한다. 당시에 사람들을 수용한 것은 실질적인 경제적 필요에서보다는 당대에 새롭게 등장했던 부르주아 모랄에 이들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당대의 모랄을 정당화하기 위한 한 조처로서 수용소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감금에 있어 경제적이고 도덕적인 요구가 공식화된 것은 노동에 대한 어떠한 경험을 통해서였다. 고전주의 시대에 노동과 게으름 사이에는 나환자들의 배제를 대신하는 분리선이 그어졌다. 저주받은 장소들의 지도에만이 아니라 도덕적 세계의 공간 속에서도, 수용소가 나환자 겨리소를 대체했다. 파문이라고 하는 오래된 의식이 이제는 생산과 유통의 세계에서 부활한 것이다. 경멸스럽고 저주스러운 이 게으름의 장소들에서, 노동이라는 지상명령으로부터 윤리적 초월성을 이끌어내었던 사회에 의해 고안된 이 공간 속에서 광기는 출현했으며 곧 확장되어 그 속에 합병되었다. 고전시대에 처음으로, 광기는 게으름에 대한 저주를 통해서 그리고 노동 공동체에 의해 보장된 사회적 내재성 안에서 지각되기 시작한다. 이 공동체는 결속의 윤리적인 힘을 획득했고, 이 힘이 그로 하여금 모든 형태의 사회적 무용성(無用性)들을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들로 자아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광기가 그의 지위를 부여받은 것은 노동의 신성한 힘들에 의해 둘러싸인 이 다른 세계에서였다. 고전시대의 광기에 다른 곳을 그리고 다른 것들을 지시하는 무엇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광인이 비합리성의 세계로부터 출현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오점들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차라리 그가 부르주아 질서의 경계선들을 가로질러 왔기 때문이며 또 그 스스로를 부르주아 윤리의 신성한 경계선들 바깥으로 소외시키기 때문인 것이다. (‘광기의 역사’) <1195호에 계속> 철학아카데미 02)722-2871 www.acaphil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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